친했지만 지금 연락하지 않는, 앞으로도 연락하지 않을 당신에게
일단 미안해요. 내가 일방적으로 당신과 연락을 끊었어요. 당신이 이 절교선언을 언제쯤 알았는지 나는 몰라요. 어쩌면 지금도 당신이 모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톡이나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도 나는 받지 않아요. 내 연락처에서 당신은 거부되었거든요.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요. 어쩌면 도망갈 수도 있어요.
당신이 뭘 잘못했냐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는 나보다 잘못했을까요. 그래도 당신이 상처 주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어요. 맞아요. 당신은 나에게 큰 상처를 줬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은 나에게 상처 주지 않았지만 나는 상처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이 상처는 내가 만든 거죠. 생각해보니 일종의 자해군요.
연락은 왜 끊냐고요? 당신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야 내 상처가 아무니까요. 당신과 다시 연락할 때 내가 상처 받을까 봐 아니, 자해할까 봐 두려우니까요. 나는 당신 말을 전부 상처로 받아들이니까요. 간단한 안부뿐이라도 당신의 말은 칼이 되어 꽂히니까요. 도대체 무슨 소리하냐고요? 그러니까요. 나는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의 말에서 칼을 느끼면 그 뒤부터 그 사람의 어떤 말도 상처가 돼요. 눈을 비비고 귀를 후비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안되더라고요. 포기했어요.
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솔직하게 말하라고요? 상처 받았으니 사과하라고?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상처 주려고 한말이 아니라니까요. 어쩌면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을 수도 있고, 나를 좋아했을 수도 있어요. 당신의 속마음을 말할 만큼 내가 편했을 수도 있고요. 맞아요. 나도 당신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당신의 어떤 말이 아팠어요. 순간 통증에 놀라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만큼요. 아까도 말했죠. 나는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다고. 예민한 당신이라면 그때 내 굳은 얼굴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네요.
왜 당신 말이 아프냐고요? 왜 상처를 내냐고요? 내가 어리석어서 그렇죠. 내가 그 당시 얼굴이 못생겼는데 당신이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요. 내가 돈이 없었는데 당신은 돈에 관한 일상을 털어놓았을 수도 있어요. 아, 반대일 수도 있어요. 내가 그때 좀 예뻤는데 당신이 지나치게 칭찬했거나, 나는 무심한데 당신은 친절했을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한 가지는 분명해요. 나는 어리석어질 때면 내 어리석음이 들킬까봐 색안경을 끼나 봐요. 그 색안경은 상처만 보이는 안경이고요.
내가 연락을 끊었다고 해서 당신을 탓하지 마세요. 착한 당신은 처음에는 연락 안 되는 나를 걱정하겠지요. 연락을 자꾸 하다 보면 내가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요. 나한테 서운할 수도 있겠네요. 서운함이 커지면 나를 미워하겠죠. 미움이 커지면 자책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나하나 없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잖아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나를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혹 우연히 만난다면 모른 척하세요. 아니, 우연히 지나가도 정말 몰랐으면 좋겠어요.
친한 사람 하나 없어졌다고 큰일 나나요?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요. 나도 그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은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내 삶에서 당신을 빼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요. 처음에는 연락을 끊고도 매일 당신을 생각했어요. 시간이 가면서 당신 생각을 점점 줄여요. 그러다가 당신을 내 머리에서 완전히 지울 거예요. 당신의 생일도, 전화번호도, 같이 했던 추억도, 얼굴 마저도.
연락을 아예 끊는 게 낫다니까요. 우리가 매일은 아니지만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잖아요. 당신에게 여러 번 상처를 받는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어쩌면 더 이상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험담을 할 수도 있다고요. 당신과 연락을 끊지 않으면 당신과 연결된 사람과도 관계가 틀어질 수 있어요. 나는 나는 내 상처를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당신을 잊을 자신이 없어요. 당신의 버릇, 취향, 가족, 눈물, 웃음소리, 함께 한 시간을 다 기억해요. 나는 당신이 그리워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당신을 생각해요. 수신거부를 해제할까 고민하고 부재중 목록에 당신이 있을까 봐 확인해요. 그러나 생각뿐이에요. 당신에게 연락할 용기도, 당신의 연락을 받을 용기도 없어요. 아마 평생 이럴 거예요. 나는 당신을 머릿속에서만 그리워할 거예요. 전혀 티 내지 않을 거예요.
이게 내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에요.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다른 방법도 없어요. 점점 나는 말이 줄고 외로워지겠죠. 외로워진다 생각하면 좀 슬퍼도, 말이 없어진다 생각하면 참 다행이에요. 내 말도 칼이 될 수 있잖아요. 말이 어디 고쳐지나요? 고칠 수 없다면 안 하는 게 낫죠. 당신과 절교해야 나는 건강한 사회적 인간으로 자랄 수 있어요.
당신과 연락을 끊어 참 다행이에요. 우리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