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신도시다. 대부분의 신도시가 그러하듯 이 마을은 이제 아파트 촌이 되었다. 이곳은 5년 전부터 인구유입이 시작되었는데 우리도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년 정도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주한 덕분에 어린이가 많은데 이 동네에만 초등학교가 3개이고 내년에 또 하나가 개교한다. 이 곳 초등학교는 (내가 근무하는) 부산에 비하면 규모가 매머드 급이다. 학급당 학생수도 많아 매년 교실을 늘리고 있다.
아파트만큼 상가도 많다. 그런데 아파트와는 다르게 상가는 빈 곳이 많다. ‘임대’라는 스티커를 붙인 채 건축자재나 쓰레기가 쌓여있는 빈 가게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임대’가 무슨 뜻인지 나에게 자주 물었고 나는 이를 쉽게 설명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처음부터 비어 있는 가게도 있지만 집 주변 대부분의 빈 가게는 장사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대’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그럴 때면 아들은 나를 보고 묻는다.
“엄마, 이 가게 망한 거지?”
‘亡’이라는 글자만큼 서러움과 고통을 함축하는 단어가 있을까. 우리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과장하기 위해 ‘망했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글자가 자영업자에게 닿는 시간은 그리 짧지도 쉽지도 않으리라. 나는 아들의 질문에 서둘러,
“그럴수록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장사가 잘 돼서 더 큰 가게로 이사 갔을 수도 있고, 사정이 있어서 잠시 문을 닫을 수도 있어. 문을 닫았다고 해서 다 망한 건 아니야.”
亡이라는 무거운 글자가 아들의 입에서 너무 가볍게 나오니 나는 ‘임대’라는 글자의 뜻을 잘 못 알려준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서둘러 변명했지만 한편으로 아들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한 상가에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가 하나 건너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특히 커피전문점과 분식집, 부동산, 편의점, 핸드폰 가게는 너무 많다. 동종업자의 경쟁으로 고객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많고 전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이쪽이나 저쪽 거의 차이가 없다. 가격 차이나 봐야 오백 원 안쪽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어제는 A커피점의 아메리카노를 사면서 가게 주인과 웃으며 인사했는데, 오늘은 B커피점의 커피를 마시며 A커피점 앞을 지나갈 자신이 없다. ‘공주병이야? 주인이 그 많은 손님 중에 설마 니 얼굴을 기억할까?’라고 반문할지 몰라도 나는 ‘배신’이 편할리 없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고3 때 채소가게를 시작하셨다.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던 엄마는 IMF 강풍에 갑자기 가게를 인수했다. 아빠가 아직 회사에서 잘리지 않아 가게는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새벽에 경매시장에 가서 채소를 사 와 팔았고, 잘 팔리지 않는 채소로 반찬이나 국을 만들어 팔았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대형마트가 흔하지 않았고 인터넷 쇼핑도 거의 없어 아파트 상가의 엄마 가게는 장사가 잘 되는 편이었다. 물론 경쟁하는 채소가게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매우 고단해했다. 엄마는 장사를 시작하고부터 웃는 얼굴은커녕 가슴팍은 차가웠고 몸에서는 비릿한 길거리 냄새가 났다. 나는 고3이지만 새벽부터 일하는 엄마에게 도시락을 기대할 수 없었다. 엄마가 나가는 소리에 나는 잠이 깨면 학교에 가져갈 점심, 저녁 도시락을 쌌다. 자존심이 센 나는 엄마가 한 것처럼 보이도록 도시락에 공을 들였다. 엄마 가게에서 가져온 김은 포장을 뜯어 은박지로 다시 감쌌고, 김치도 친절한 엄마가 한듯 가위로 잘게 잘라 넣었다. 소시지나 햄은 계란옷을 입혀 구웠고 국물이 흐르는 음식은 랩으로 네 귀퉁이를 똘똘 뭉쳤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보온병에 보약을 싸와 마시고 싶었고 ‘우리 딸 공부하느라 힘들지?’라고 적힌 쪽지를 받고 싶었다. 밥 먹을 새도 없이 일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모기가 없는 독서실도 갈 수 없었다. 나는 야자를 마치면 엄마 가게로 가서 가게 문을 닫았다. 밖에 꺼내 놓은 채소 상자를 안쪽으로 옮기고, 팔던 두부와 콩나물을 냉장고에 넣고, 계란을 15개씩 비닐에 담았다. 내가 가게를 정리하는 동안 엄마는 구석 계산대를 열어 그날 번 돈을 셌다. 돈을 세는 엄마의 얼굴-엄마는 매일 밤 수능시험을 가채점하는 얼굴을 했다. 장사가 잘 된 날은 고단함을 잠시 잊는 깊은 한숨을, 장사가 안 된 날은 서러움의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동네 상가에 또 다른 채소가게가 오픈했다. 아파트 입주자 카페에는 오픈한 채소가게가 물건 값도 싸고, 사은품도 주고, 이만 원 이상 사면 복권도 주니 어서 가보라는 글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몇 시까지 하냐고, 좋은 정보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글을 보니 나는 마음이 짠했다. 내가 원래 가던 채소가게는 나보다 젊은 청년 두 명이 장사를 한다. 저녁을 먹고 늦게 가면 떨이라며 싸게 주기도 하고, 상자째 과일을 사면 우리 집까지 가져다준다. 남편은 새로 오픈한 가게에 수박을 사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새 채소가게가 오픈한 날, 원래 있던 채소가게 청년들의 얼굴을 우연히 봤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된 날, 돈을 세던 우리 엄마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더할 수도 있다. 엄마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경쟁자는 없었으니까.
“왜 두 채소가게가 마주 보고 경쟁할까? 가게를 같이 합치면 안 되나?” “말이 돼?”
안타까운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하긴 채소가게뿐이랴. 커피전문점은 나란히 4개가 경쟁하고 있고 분식점도 3개가 경쟁 중이다. 단골 치킨집에 주문하려고 배달앱을 켜서 찾았더니 폐업했다는 알림 창이 떴다. 나는 나만의 의리를 지키느라 모든 가게에 가지는 않지만 쓰기도 고통스러운 그 글자가 실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빈 가게의 ‘임대’ 스티커를 보고 싶지 않다. 우리 아들이 빈 가게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동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어린이가 많은 것처럼 가게에도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동네 자영업자가 늦은 밤 가게 문을 닫으며 부디 고단함을 잊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