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끼는 담임

담임의 노동시간은 선글라스가 지켜줍니다

by 물지우개

내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새로 생긴 실내놀이터에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오픈 전이라 한산했지만 이내 사람들이 몰려와 줄이 길어졌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앞에 낯익은 어린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뿔싸, 우리 반 아이였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찾았다. 위급한 순간, 화장실 빈칸을 찾아 마구 문을 두들기는 사람처럼 정돈된 가방에 손을 넣어 마구 휘저었다. 가느다란 안경다리가 느껴지자 꺼내 급히 썼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엄마, 왜 그래?”

“아, 아니. 엄마가 급히 얼굴을 가려야 해서.”

“왜?”

“그러게 말이다. 마주치면 안 되는 사람을 봤네.”

“누군데?”

“......”


마주치면 안 되는 사람이라 했지만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서둘러 아이들을 놀이터로 들여보내고 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카페에 앉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는 왜 얼굴을 숨겼는지, 아이들이 물었을 때 왜 말을 못 했는지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하며 생각했다.


나는 학부모가 대체적으로 불편하다. 더군다나 아까 서있던 어머니는 불편함의 정도가 평균 이상이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툼이 있었을 때 상황을 설명하느라 내가 전화를 건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적대적인 느낌이었다. 상대 아이뿐만 아니라 이런 일로 전화한 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최대한 말을 줄이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학부모와 밝게 인사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의 마지막 통화는 분명 둘 다 언짢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먼저 얼굴을 가렸어야 할까. 내가 진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그 어머니를 보고 모른 척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렇다면 나와 친한 학부모-친한 사이가 가능할까 싶지만 그나마 나에게 우호적이라던가, 자주 통화해서 대화가 어렵지 않은 사이라면 나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나는 선글라스를 찾았을 것이다. 아까처럼 다급하지는 않더라도 가방에 손을 넣어 더듬고 있으리라. 찾아지면 다행이고 못 찾으면 어쩔 수 없는.


지금 나는 학교에서 보던 선생님이 아니라 동네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네 아줌마를 비하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주는 용기와 생동과 발랄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동네 아줌마가 학교 선생님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동네 아줌마가 교단에 설 때는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선생님의 모습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즉 내 모든 감각이 교사로서 변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교사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이 상황은 우리 반 아이를 교사로도, 혹은 아줌마로도 대할 수 없다.


고작 교사가 그리 대단한 인품이냐고, 어차피 똑같은 사람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맞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교실에서 나는 동네 아줌마가 아니고, 엄마도 아닌 선생님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공정하고, 헷갈릴 때 바르게 알려주는 기준이다. 약속을 지키는 시계고, 아이들의 생각을 흡수하고 내뿜는 마이크이자 스피커다. 아이들을 응원하고 용기를 주는 치어리더이고 같이 손을 잡고 신나게 노는 친구다. 옷을 갈아입으면 영웅이 되는 어느 캐릭터처럼 나도 학교에 있는 순간은 이렇게 변한다. 이게 내가 하는 신성한 노동이자 교사로서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사석에서 우리 반 아이를 만나면 나는 혼란스럽다. 내 아이를 옆에 두고 교사가 될 수도 없고 우리 반 아이 앞에서 아줌마일 수도 없다. 웃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글라스를 찾아서 급하게 가방을 뒤질 수밖에 없다. 더 솔직하게, 노동시간이 아닌데 나는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 내 안에 숨어있는 헐크를 가끔 만난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설거지를 하다가 수세미를 던진다. 제발 뛰지 말라고 회초리를 들고, 숙제는 언제 할 거냐며 타박한다. 아들 일기장에 글씨가 엉망일 때는 다시 쓰라고 닦달하고, 딸이 밥을 너무 많이 먹을 때는 살 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핀잔준다. 내 몸 피곤할 때는 제발 내 옆에서 떨어지라고, 가까이 오지마라고 부탁한다. 엄마로서 교과서가 아닌 건 알지만 나도 평범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평범한 아줌마로 나를 알거나, 내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처럼 대하는 엄마랑 사는 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모두에게 불행이다. 남자 선생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내에서 급하게 선글라스 끼는 아저씨나 아줌마가 보이면 ‘학교 선생님이구나. 고객님을 갑자기 만났는데 노동시간이 아니라서 저러는구나.’라고 부디 이해해 주시길.


혹시 우연히 밖에서 내 아이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모른 척 눈을 피해 지나가는 미덕을 베풀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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