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겨루는 오늘의 가족애

보이스피싱의 수법은 절묘했다

by 물지우개

시부모님을 포함한 나의 시가가족은 시금치를 못 먹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그렇다면 글을 쓸 수도 없겠지). 시부모님은 ‘너희들끼리 잘 사는 거 외에는 바라지 않는다’는 기저 아래 명절과 가족행사를 포함한 여러 용건마저도 간단하신 분이다. 특히 며느리에 대한 기대는 가정 유지-며느리가 당신의 아들, 손자와 함께 사는 일뿐이다.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되고 싶고, 되어야만 하는) 나는 바람직한 시어른으로서의 언행을 지금도 배우고 있고, 가르침에 감사한다. 다른 시가 가족도 마찬가지. 시부모님이 바르니 우리끼리 담합할 일도 싸울 일도 없고, 용건은 더 심플하다.



제주도 여행 중 차 안에서 카톡을 받았다. 명절에 나누는 인사도 어색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연락은 일 년에 한 번도 생각하기 힘든 시숙님의 메시지였다. 목적은 급히 돈이 필요한데, 가능하다면 보내달라는 내용으로 나는 당황을 넘어 황당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말 못 할 사고를 치셨을까? 왜 나한테 말씀하시는 거지? 나는 비밀을 지킬 만큼 시숙님께 믿음직한 사람인가? 나에게 말할 정도면 정말 급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차라리 돈이 아니라 사고를 말하면 내가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돈을 준다면 얼마까지 드릴 수 있을까? 내 통장 이체 가능금액이 얼마더라? 백만 원 안이라면 못 받는 셈 치고 보내야겠지? 그런데 백만 원보다 크면 어쩌지? 남편한테 말할까? 시숙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나마 잡을만한 지푸라기가 나란 말인데 이렇게 냉정해도 될까? 앞으로 시숙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지? 백만 원도 적지 않은 돈인데 나는 정말 그 돈 없다 생각할 수 있을까? 분명 돈 생각 날 텐데... 오십으로 줄여야 하나. 오십이면 나는 쿨 해질까?


“엄마 왜 그래?”


일그러지는 내 표정을 감지한 아들이 물었다. 그 말에 차 안에 있던 남편도 백미러로 나를 보고 조수석의 딸도 뒤돌아봤다. 비밀 발설로 서운해하실 시숙님보다 그 반대일 때 화낼 남편이 더 와 닿았다. 나는 전화기를 남편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남편은 보자마자,


“보이스피싱인데?”


사기당하지 않은 다행함과 번뇌를 끝낸 기쁨은 비슷했다. 내 옹졸함을 드러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애만 쓰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심리테스트랄까. 돈 뜯어가는 방법이 심리테스트라니... 나는 분개했다. 돈으로 알아보는 가족의 마음, 믿음, 관계의 테스트였던 셈이다. 눈뜨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 가족애로 돈 날리는 세상인 셈이다. 그나마 시숙님이니 나는 번뇌의 시간이라도 벌었지, 적절히 가까웠다면(너무 가까워도 사기의 타깃이 되지 않으리라) 나는 이 심리테스트에서 옹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기는 다시 시부모님께 전달되었다.


“좀 전에 제가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했어요. 혹시 시숙님이 돈 보내달라는 카톡 오면 사기니까 절대 돈 보내지 마세요. 아시겠죠?”


시부모님의 심리테스트는 극명히 다른 두 결과를 보여주었다.

시아버님은,


“설령 그 메시지가 진짜라도 절대 돈 보내면 안 된다. 가족이라도 돈으로 얽히면 안 된다. 적은 돈도 절대 주고받지 마라. 다 같이 망한다.”

시어머님은,


“아가, 이 메시지는 사기라니 참 다행이다. 진짜 급하면 전화를 하지, 카톡으로 돈 달라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정말로 시숙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오면 돈 보내줘라. 그 돈, 내가 줄게.”


부성과 모성의 차이일까, 두 분 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심리테스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냉정한 원칙도, 따뜻한 비밀 출구도 분명 사랑이다. 어느 사랑이 더 옳다 말할 수 없다. 오십만 원, 백만 원 계산기 두드리던 내 값싼 심리는 찌그러져야 한다.




이런 사기가 아니라 실제로 시가나 친정의 가족이 돈으로 나를 테스트를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계산하고, 계산하지 않을까. 가족애를 돈으로 측정하는 게 얼토당토않지만 나는 아버님처럼 냉정한 원칙을 지킬까, 아니면 어머님처럼 따뜻한 비밀 출구를 내어줄까. 반대로 내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가족에게 요청했을 때 그 어떤 결과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철저한 계약관계라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할 수 있을까. ‘사랑, 좋아하시네.’라고 코웃음 치던 법륜스님의 말씀을 뼈저리게 느끼며 가족 앞에서 계약서나 차용증을 쓰고 있을까.



목숨 같은 돈, 아니 목숨보다 귀한 돈과 겨루는 오늘의 가족애를 생각한다. 돈의 상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 하늘에 별도 따줄 아내다. 건강하기만 하라던 딸이고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한 남편이다. 그리고 그(그녀)와 연결된 가족이다. 돈이 끼어들 수도 없고,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가족이다. 피땀 흘려 모은 피눈물 같은 돈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필요 없는 가족이다.


학원 전기세를 보태주고 있지는 않은지,

학원비와 효과가 비례하는지.

학원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사소한 돈이 또 스멀스멀 끼어든다.


그날의 보이스피싱을 떠올리며 법륜스님 흉내를 잠시 내본다.

'가족, 좋아하시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선글라스 끼는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