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어디서 무얼 하든 휴대전화가 있어야 한다. 그저 전화나 걸고 용건 위주의 짧은 문자 메시지나 보낼 수 있던 휴대전화에 '스마트'라는 거창한 단어가 붙은 이후부터,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 현대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복잡한 기기가 되었다. 뭐 이러저러한 눈부신 기술 발전에 대한 내용은 차치하고, 휴대전화가 '나'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 같은 때에는 (특히 성인이라면) 마땅히 휴대전화가 있어야만 '나'의 존재를 증명해 낼 수 있다.
단순히 예전처럼 온라인 홈페이지에 나를 인증하는 때에만 휴대전화가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정신없이 혼재되는 이 시국에는, 휴대전화로 (QR코드든 전화번호든)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오프라인에서의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졌다.
이러한 때에 나는 주말마다 도서관 현관에 앉아 꼬박 두 시간 동안 QR코드 인증을 안내한다. 도서관 이용자의 대부분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카메라에 찍는다. 그들은 묻지도 고민하지도, 그렇다고 의심하지도 않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일련의 과정을 해낸다.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탓인지 빠르게 이 상황을 납득하고 익숙해진 듯 보인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버벅대고 있으면 처음 만난 이라도 옆으로 다가와 방법을 일러준다. 그래서 사실 이 업무는 현관이라 춥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어려울 일이 없다. 물론 이른바 '진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진상'이란 게 다른 게 아니다. 자기가 진상인지 모르는 사람이 '진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직원들 사이에서 '진상'이란 공유되기 마련이다. 일요일에 만난 '진상'은 이미 몇몇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이였다. QR코드 인증을 해달라는 직원에게 회원카드를 내던지며 큰 소리를 낸 탓이다. 그것이 남의 일일 때에야 그저 희한한 사람이 왔었나 보네, 싶었지마는….
그녀는 입장부터 남달랐다. 카키색 외투에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힘차게 도서관 문을 열어젖혔다. 중앙 현관의 유리문이 벌컥 열리고 잇달아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나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내심 유리문을 저렇게 세게 열다니 깨지면 어쩌려고, 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나는 앉아있었고 그녀는 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눈을 아래로 뜨고 나를 내려 보았다. 잠깐의 눈 맞춤 뒤 이내 나는 QR코드 인증 후 손 소독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건넸다. 그때까지 내게 그녀는 그냥 힘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 눈 앞에 대뜸 회원카드를 들이밀기 전까지는.
QR코드 인증을 요청하는 이유 중 가장 첫 번째야 그것이 정부 방침이기 때문이지마는, 가능하면 개인정보를 받지 않으려 함도 있다. 한 번이라도 이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상주하는 이가 직원일 때도 있지만 아르바이트생일 때도 있고, 근무하는 인력이 계속 바뀐다. 개인정보라는 것이 애당초 관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개인정보는 파기가 원칙인데, 이 경우에는 목적이 목적인지라 파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없는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QR코드로 인증을 받는다. 당신들을 귀찮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죄송하지만 성인이시라면 QR코드 인증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 말에 그녀는 목까지 시뻘게졌다. 기껏해야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8~90대 어르신들도 해내는 QR코드 인증을 그녀는 할 수 없다고 악다구니를 썼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강제로 개인정보를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호통치시던 할아버지 이후 처음 만나는 '진상'이었다.
"나 회원이에요! 그냥 들어가게 해 줘요!"
도서관에서 그렇게 큰 소리 내는 사람은 미취학 아동 외에는 처음 봤다.
"아니 그러면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은 어떡해?!"
물론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는 아니다. 쩌렁쩌렁 소리치는 그녀의 왼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으니까. 그녀의 뒤로 들어온 이가 그녀를 슬쩍 쳐다보고는 익숙하게 QR코드를 찍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몇 명이나 그녀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본인의 회원카드를 내 눈 앞에서 흔들었다. 카드 뒷면은 잉크가 다 바래 그녀의 이름은커녕 바코드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짧게 한숨 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건 간에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고! 지금껏 나는 늘 회원카드로 처리했어!"
선생님이 억지 부리니까 들어주신 거겠지요.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을 간신히 삼켰다. 머릿속에 어느 정도까지의 친절이 나의 업무일까 하는 상념이 맴돌았다. 그녀의 뒤로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애가 고개를 빠꼼 내밀었다. 맙소사, 아이가 보고 있는데도 저렇게 소리치는 거야? 고민을 길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내 상식 밖의 인물이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회원카드를 받아 들고 잉크가 흐려져 리더기로 찍히지도 않는 그녀의 회원카드 번호를 수기로 입력했다. 이윽고 그녀는 탁 소리가 나게 내 손에서 회원카드를 채간 뒤 도서관 안으로 총총 사라졌다. 나는 이마를 잡았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용자 한 분이 눈빛으로 나를 위로했다.
내게 할당된 근무시간이 끝나는 대로 나는 씩씩거리며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동료들에게 이러저러한 사람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동료들은 그녀가 유명한 이라고 내게 알려줬다. 이미 다른 직원에게 한 번 회원카드를 내던진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도서관에 자주 오는 듯했다.
못된 말이지만, 나는 그녀가 도서관에 자주 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도 사람이니 그녀를 꺼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속이야 내가 알 수 없지마는 그녀도 모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꺼리는 이들이 일하는 도서관에 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일삼는지가 이해가 안 되었다. 책을 활자 그대로 줄줄 읊기만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일요일의 잔상이 남아 아른아른하다. 진상의 기억은 이렇게나 길다. '친절'이 나의 업무인가를 다시 고민한다. '친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다. 참는 것이 친절인가? 웃는 것이 친절인가?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감정노동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나는 감정노동자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업무인가? 물음이 도돌이표를 그린다. 그렇게, 월요일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