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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Nov 22. 2023

데미안의 집 b 2

워킹비자스폰서쉽과 브렉시트

London, England 2017


 그때 내 모습에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한 번씩 구경하고 갔다고 그리고 다들 정말 걱정했다고 데미안이 덧붙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곰은 크게 웃었다. 다른 친구들도 뭔데 뭔데 하는 사이 곰이 다 같이 예거밤을 해야 할 때라고 벌떡 일어섰다. 언제나 기가 막힌 타이밍을 아는 곰은 나의 연인이었다. 내가 사는 집에 퇴근하고 놀러 와서 항상 내 플랏메이트들의 눈치를 보며 하루씩 머물다가 가던 어린 시기였다. 우리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나의 비자 스폰서십을 진행해 준다는 좋은 소식을 듣고, 그 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런던으로 돌아와서(한국에서 신청해야 함) 같이 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정해진 날짜가 없는 상황이라, 한국에 한 두 달 다녀온 다음, 본격적으로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데미안의 할머니댁의 방 하나가 비어있고, 데미안이 아는(검증된) 플랏메이트들을 찾는다는 굉장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몇 달간 웨일스에 있는 데미안의 엄마가 런던에 다니러 와야 해서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내 방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방에 내 짐을 미리 옮겨둬도 된다고, 런던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월세를 내기 시작하라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되게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우리 테이블 위로 말풍선 세 개가 우리의 머리 위로 떠오랐다. 데미안에게는 한국음식을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나에게는 그 좋은 집에 남자친구와 함께 산다는 미래로, 곰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샤워하는 편안함으로.     

2층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우리가 살 방은 bedroom1으로 욕실과 화장실이 붙어있는,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이었다. 할머니가 월세를 받으셔야 해서 데미안, 엠마가 두 번째로 좋은 방에 공짜로 살고 좋은 방을 세를 주기로 합의했다. 또 다른 친구 제임스는 런던에서 일주일의 반만 지내기 때문에 공용 욕실을 함께 사용해도 큰 불편함이 없을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살던 집의 짐을 줄이고 줄여 이민가방 하나, 캐리어 하나와 언더베드박스 2개에 갖가지 세간을 욱여넣었다. 아끼던 스툴과 자전거도 당연히 챙겼다. 짐을 옮기기 전, 데미안이 짐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지 방의 치수와 붙박이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이 사진이 나중에 이 집을 기억할 유일한 사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3층은 엠마와 데미안이 사는 다락방이 있다. 다락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사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1년간 로테르담에서 일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런던을 방문하는 엠마와 데미안이 살기에 적절한 크기였다. 코너에 들어갈 딱 맞는 마름모꼴 책상도 주문 제작했다. 디자이너는 주문제작을 참을 수 없지.

3층 도면

 이렇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이 달스턴 집. 한두 달 기다리면 될 것 같았던 비자 스폰서쉽은 총 8개월이 걸렸다. 브렉시트가 영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던 첫 해였다. 원래 워킹비자가 필요없던 유럽피안들이 워킹비자신청에 한꺼번에 줄을 섰다. 1순위인 의사, 간호사도 몇달을 기다렸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나는 탈락 안내 이메일을 매달 받고 다시 신청하는 절망과 희망의 세계를 반복해서 다녀왔다. 아쉽지만 다음 달을 기대해 보자, 하며 6번의 좌절을 맛보던 잔인한 해, 2018년. 7개월째인 그 해 10월, 마침내 워킹 비자가 영국정부로부터 승인되었을 때, 나의 전 회사는 나를 영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포기했다. 월급을 줄 여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회사는 가장 큰 프로젝트의 외국 클라이언트로부터 브렉시트 결과에 대한 보복성 계약 철회로 큰 데미지를 입고 경영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인원 30% 감축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잔인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그렇게 졸지에 브렉시트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 방(2층의 bedroom 1)에서 살아갈 나와 곰을 매일 그려봤던 나는 가늠할 수 없는 깊고 끝이 안 보이는 절망에 빠졌다. 욕실에 어떤 화분을 둘지, 어떤 향기의 바디워시를 쓸지 눈으로, 코로 상상하던 시간들이었다. 발표가 나기전  5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데미안으로부터 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춥다물 잘 지내고 있지?

너의 비자 결과를 기다리느라 힘든 나날을 보낼 텐데 이런 얘기하게 되어 정말 유감이다. 네 방에 잠깐 지내던 우리 엄마는 지난주에 웨일스로 가셨어. 근데 프랭키가 지금 방을 구하고 있고 그 방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그래도 네가 다음 달부터 들어올 수 있다는 확신을 받으면 한 달은 더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도 집세를 받아야 해서 그 이상은 기다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너의 생각을 알려줘.

-진실한 마음을 담아 데미안


 아침에 일어나 이 문자를 보고 나는 누운 채로 내 몸이 침대아래로 꺼지지 않도록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가 들이마셨다. 올 것이 왔구나 하며 그동안 머릿속에서 조금씩 대비하고 있던 문자를 잘 다듬어 전송했다.


안녕,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잘 지내지?

데미안 그동안 기약 없는 나를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나와 곰은 정말 그 집에서 살고 싶지만 더 이상 너와 너의 할머니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프랭키에게 그 방을 넘겨줄게. 짐은 곰한테 와서 가져가라고 할 테니 며칠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몇 달간 내 많은 짐과 자전거를 맡아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미안해할 건 없지만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큰 사랑을 담아 춥다물


 곰에게 전화를 했다. 곰의 시간은 밤 11시일 것이다. 한국의 나와 영국의 곰은 전화기 너머로 없어진 집에 대한 미련과 알 수 없는 불안에 오래도록 슬퍼했다. 결론적으로 파티에서 토를 하고 쓰러져 잔 하룻밤만이 내가 이 집에 살았던 유일무이한 기억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집의 도면을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년 후 데미안의 할머니는 이 큰 집과, 따로 떨어져 있는 창고에 뜯지도 않은 어마어마한 홈쇼핑의 흔적을 남기고 생을 달리 하셨다. 남겨진 가족들은 이 집을 좋은 가격에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 주었지만 나는 내 기억으로 그려진 도면을 확인하러 다시는 이 집에 방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커다란 이민 가방과 박스에 구겨져 있던 갖가지 세간과 아끼던 스툴과 자전거는 내가 영국에 없던 8개월간 데미안의 집에서 곰의 집으로, 임대 창고로 다시 한국으로 옮겨졌으며, 어떤 물품은 다른 주인을 찾기도 했다. 그 일을 온통 다 도맡아 해 주었던 내 구 연인, 곰은 현재 나의 남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당연히 그 스툴도 살아남아 우리 침대 옆에 근엄하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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