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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Nov 22. 2023

데미안의 집 b 1

뮤스하우스(mews house)와 마리화나 알러지

London, England 2017


 이 집은 데미안의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살고 계시던 집이었다. 전에 한번 짐을 찾으러 가는 데미안, 엠마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로 북적북적한 달스턴역에서 내려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어 갑자기 엄청 조용해졌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면 나타난다. 공동현관이 철컥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 끝에 반원 형태의 큰 정원이 나타나고 그 정원 뒤로 방사형으로 집들이 벽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이 방식을 뮤스 하우스(mews house)라 부른다. 18,19세기에 왕실, 귀족의 마부와 마차를 관리하며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골목 어귀를 차단하게 만들어진 마구간 주택(mews house)들이 현재에 와서는 골목 끝자락을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며 통째로 공유하는 고급주거 형태로 변해서 집 주소가 Mews(마구간길)이면 고급주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왕실 근처의 고급주택가인 켄징턴 주변에 많이 나타난다. 주거 형식 때문은 아니지만 재밌게도 서울의 말죽거리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1층 도면 / 생활공간만 있음

  이 달스턴 집이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가고 있을 때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펍 '카펜터스 암'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한국으로 몇 달 돌아가기 전에 볼 겸 마련한 생일파티였다. 제일 늦게 도착한 데미안이 한국에 갔다 와서 집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왔다.

    "곰이랑 같이 살 집을 구하려고 해. 그전에는 내 짐을 창고 같은 데 맡겨놓고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얼마나?"

    "글쎄, 나도 몰라, 아무도 모를걸?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과정이거든."

    "흠. 너희 둘이 같이 살 거라면, 사실 나 할머니집에 얼마 전에 들어갔어. 나이가 많으신데 혼자 사시기엔 너무 크고 3층이라 계단을 이용하기 힘드셔서 고모댁으로 가셨거든. 그중에 방이 2개 남아서 세를 주려고 하는데 관심 있어? 너도 와 봤었지? 달스턴에 있는 집?"

 데미안의 할머니 집이라고 하면, 이스트런던의 힙한 동네 달스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조용한 집, 그 좋은 터의 옛 집을 개조해서 좋은 가구와 최신 주방 장비가 갖춰진 바로 그 집 아니던가. 나의 정신을 지배하려던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진짜? 근데 곰도 함께 살 수 있어?"

    "상관없어. 안 그래도 제일 큰 방, 언 스윗(전용 욕실, 화장실이 있는 방)을 커플한테 세 주려고 했었거든. 나도 아는 사람이 들어와서 살면 좋지. 어 맞다. 그 방이야. 네가 쓰러져 잤던 방."

    "정말? 내가 쓰러져 잤던 방! 이건 운명이야!"

 호들갑을 떠는 내 옆에, 장난스럽게 놀란 얼굴을 한 곰이 끼어들었다.

    "술을 도대체 얼마나 마셨던 거야?"

    "술은 아니고, 내가 전에 말한 적 있지? 내가 마리화나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파티?"

    "아, 그 파티."

2층 도면/ 침실공간 위주. 번호는 쓰러져 잠들기까지 취객의 이동경로

   가끔 길거리에서 마리화나(영국은 의료용 마리화나만 합법이지만 개인이 일정량이상 소지하거나 거래하지 않는 이상 처벌 대상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많이 피움.) 냄새가 나면 머리가 아프곤 했다. 어느 날 이 집 파티에 초대된 나는 계속 마리화나를 피우는 데미안의 친구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정말 갑자기, 속이 너무 메스꺼워진 것이었다. 1층에서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을 찾아 2층으로 거의 기어올라와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바로 보이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1번처럼 고꾸라졌다. 몇 시간 전에 먹었던 음식물이 식도로 바로 넘어왔다. 닫혀있던 변기의 뚜껑을 올릴 새도 없이 터져 나온 토사물로 화장실 안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배수구가 없는 건식 화장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화장실의 타일 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 남의 변기를 더럽혀 놓은 어글리 코리안이 됐다는 사실에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루마리 휴지를 양손에 휘감고 상모 돌리듯이 상체를 돌리면서 도자기를 빚듯이 정성스레 변기를 천천히 닦았다. 내 생각엔 5분쯤 지난 것 같은데 작업이 이루어지는 사이 5명 정도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누군데 도대체 삼십 분째 화장실에 있는 거야?'라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작게 들렸다.

    "나, 춥다물... 지금... 안에... 여기... 있어."

 나만 들리게 말이 어눌하게 나왔다. 망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거의 다 쓰고 냄새가 안 나게 핸드워시를 화장지에 묻혀 변기전체를 물기 없이 닦고 물을 묻혀 한번 더 닦는 기지까지 발휘했다. 여전히 빙그르르 상모를 돌리면서.

 변기와의 사투가 끝나고 모든 xp를 고갈시키고 화장실을 다시 기어 나왔다. 바닥이 눈앞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나는 잠깐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직 수리가 덜 끝난 3층 엠마와 데미안의 방에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다 계단에 2번처럼 대각선으로 쓰러졌다. 천장이 내 눈앞까지 왔다가 멀어졌다. 가만히 바닥에 누워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험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채 거의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춥다물은 집에 간 거야? 아니 아까부터 안보이더라고, 어, 저 발 누구야? 오 마이 갓. 춥다물! 너 여기서 뭐 해?"


 2층의 가장 큰 방(bedroom1(en suite))에서 눈을 떴다. 2층 도면의 3번처럼 모로 누워있는 채였다. 그러나 그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단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방으로 옮겨 준 엘리가, 내가 잠깐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지는 못 하고 음, 흐음 앓는 소리를 내자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겠냐며 내 정신을 살폈다.

    "데... 미안... 집"

    "맞아. 춥다물, 너 마리화나에 알러지가 있는 것 같아. 너 계단에 쓰러져 있었어.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너 여기서 자고 가야 할 것 같아. 근데 네가 아마 오늘 밤 유일하게 이 집에서 자는 여성일 거야.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 너 여기서 혼자 자도 괜찮겠어?"

    "어... 응... 굿."

    "정말이야?"

    "어... 응... 돈... 워리이."


 나는 엘리가 떠다 준 물을 다 마시고 3번처럼 모로 누워 내리 10시간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같은 방, 바닥에 매트리스만 깐 채로 한 명이 더 자고 있었다. 벽을 짚으며 바닥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타 넘고 방에서 나와 어제 내가 어지럽혔던 화장실의 문을 열어봤다. 토사물은 보이지 않았고 핸드워시 냄새가 향긋하게 났다. 안도하며 화장실 내부에 거울로 얼굴을 보니 양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아직도 흔들리는 천장에게서 눈을 돌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벽을 밀어내며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거실에서는 소파마다 한 명씩, 세명의 파티의 전사자가 더 발견되었다. 정말 모두 남자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가방과 겉옷과 핸드폰을 찾아내 좀비처럼, 어그적 어그적 집을 나섰다. 에코백안에 핸드폰과 텀블러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마치 달그락달그락 말굽소리처럼 울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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