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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Jun 19. 2024

두 번째 면접

오랜만에 힐을 꺼냈다

 런던 코벤트 가든의 중심에 있는 회사에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너무 설렌 탓이다. 그러나 너무 설렜다고 일찍 면접장에 도착하는 것은 아마추어지. 회사 앞에 출입문까지 가 본 다음 근처에 카페에 들어갔다. 1분이 채 안 걸리니, 5분 전에 현관문 앞에 도착하면 될 것이다. 키가 크면 조금 더 자신감 있어 보일까 싶어 힐을 신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이 그랬겠지, 쟤는 키에 자신이 없구나.


 일층에 건물 로비에서 직접 승강기까지 안내해 주고 층 버튼까지 눌러준다. 대단한 환대와 엄격한 감시를 동시에 받는 것 같아 어깨가 더 긴장된다. 승강기 문이 닫히고 얼른 민트향 사탕을 하나 물었다.

 2층에 도착하자 두 번째 로비가 있다.

    "안녕 난 춥다물인데, 면접을 보러 왔어."

    "안녕, 그래 다니엘이 널 기다리고 있어. 네가 도착했다고 말해 줄게.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응 알겠어."


 아이패드, 이력서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놨다. 잠시 짬이 생겼을 때 다니게 될 지도 모를 회사 건물을 훑어본다. 전체 층이 오픈 플랜으로 디자인된 디자인 사무실이다. 좋은 바닥 재료, 깨끗하게 마감된 전면 유리로 된 회의실 앞으로 디자인상을 받은 호텔의 이미지가 커다란 화면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굉장히 자유분방한 분위기면서 한편으론 무한대로 산만해질 수도 있는 곳이다. 외부 공기가 어디서 들어오지? 테라스는 있나? 화장실은 어디지? 나가기 전에 한번 꼭 들러야 겠다.

 내가 여기 저기를 스캔하고 있는 동안, 로비에 앉아있는 새로운 얼굴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본다. 눈을 맞추고 눈인사를 한다. 어떤 이는 길게 눈을 맞추고, 어떤 이는 눈을 잘 못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돌린다. 내가 같이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중에 저 반대편에서 나를 향해 직선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틀림없이 쟤가 '다니엘'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녕 네가 춥다물이구나! 미안해 기다렸지? 앞 선 회의가 이제 끝났어."

    "안녕 만나서 반가워 다니엘. 회의 잘 끝났길 바랄게."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듯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본다.

    "어우, 아주 길고 힘든 회의였어. 회의 끝나고 너를 만나는 게 지금 얼마나 좋은 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친근한 환영인사 덕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것 같다.

  가장 안 쪽에 위치한 회의실로 안내한 후 나를 자리에 앉히고 마시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허만이 함께 할 거야. 재밌는 건 10년 전에 내 면접관이었어."

 허만과 다니엘은 정말 여유롭고 친절한 면접관들이었다. 허만이 십 년 전에 다니엘을 뽑았던 것처럼, 다니엘이 나를 뽑아서 우리 같이 일헀으면, 속으로 바라본다.

     "요즘엔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지만, "

하고 깔끔하게 제본된 포트폴리오도 꺼냈다.

    "오, 정말 잘 만들었다. 종이 질감도 너무 좋아."

 면접관 테스트 통과. 너네가 제주도에 지은 호텔에서 내가 얼마나 가까이 지냈는지, 거기 뷰가 얼마나 좋은 지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이력서의 첫 장을 펼쳤다. 대학교 담당교수의 사무실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얘기, 그 이후에 만난 클라이언트 회사로 옮겨가면서 인테리어 업무를 경험했던 일. 그 후 어떻게 영국에 처음으로 오게 됐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가 지금 너희와 함께 있게 된 건지 찬찬히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다니엘의 런던 이주기, 허만의 이직기가 들어왔다. 이건 마치 마음 맞는 세명의 직장동료가 차 마시면서 하는 대화 같잖아.

 허만이 갑자기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근데 건축과를 나와서 인테리어도 했네. 네 정도 포트폴리오라면 어느 건축회사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인테리어 디자이너직 지원한 거야?"

    "넌 보는 눈이 상당하구나."

 긴장이 풀려 너스레도 나온다. 일동 웃음.

    "솔직하게 말하면 건축회사에 지원하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했던 일이 인테리어일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회사로 연결이 많이 되더라고.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에이전시에서 추천해서 너희와 함께 지금 인터뷰를 하게 된 거야. 내가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모두 경험하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이거야."

침을 한번 삼켰다. 덩달아 다니엘과 허만도 몸을 앞으로 끌어당겨 앉았다.

    "인테리어와 건축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 소요시간, 디테일, 검토 서류,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르니까.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인테리어와 건축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야. 디자인은 디자인이니까.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산안에서,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는 여정이라는 점이서 말이야."

허만이 입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다리를 고쳐 앉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잠시 우리는 서로 눈을 길게 맞추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와 씨, 나 된 건가?


-당분간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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