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춥다물 Jul 03. 2024

면접 결과 기다리기 절망 편

그린 라이트? 레드 라이트?

 면접이 1시간 45분 만에 끝났다. 원래는 1시간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면접이었다. 그때가 1월 말이었으니까 3시에 시작된 면접이 끝난 4시 45분의 런던의 창 밖은 이미 깜깜했다. 내가 가방을 정리하고 나오려는데 회의실을 먼저 나서던 허만이 닫히던 문을 다시 잡아 열고 뒤돌아보며 다니엘에게 지시했다.

    "춥다물 사옥 투어 좀 시켜줘."


 회의실을 나선 우리는 오픈 플랜 사무실을 가로로, 세로로 끝까지 같이 가봤다. 내가 두 시간 전에 들어와서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눈으로만 멀리 왔던 사무실의 끝과 끝이었다. 새로운 얼굴이 다니엘과 함께 사무실을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은근히, 혹은 대 놓고 나를 구경했다. 어떤 이는 오래 눈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했고, 어떤 이는 금세 흥미를 잃고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회의실, 다른 회의실, 탕비실, 모형 제작실, 샘플실, 디자인 1팀부터 6팀까지 다니엘이 자세하게 평면을 훑으며 설명을 추가한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딴생각을 한다. 의자는 허만 밀러군, 테이블 높이 조절은 되는 건가? 저 자리는 너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는 거 아닌가? 저기 앉으면 화장실이 너무 멀겠네, 좋지 뭐.

 

 십여 분간 이어진 사옥 투어를 끝나고 상기된 얼굴과 힘이 풀린 다리로 회사를 나서자마자 핸드폰을 보니 에이전시에서 면접이 끝나면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와있다.

    "안녕 엘레노어."

    "안녕 춥다물. 면접 잘 끝났니? 지금 끝난 거야? 오래 걸렸네."

    "응 지금 방금 끝나고 나오는 길이야. 그러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끝나고 투어도 해줘서 더 늦게 끝났어."

    "투어를 해줬다고?"

    "응."

    "오 그거 좋은 사인이야!"


 집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신은 힐 때문인지, 면접 때문인지 다리가 너무 피곤했다. 발을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곰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면접은 잘 끝났어?"

    "응, 그런 것 같아. 꽤 오래 했어, 그리고 사옥 투어도 해줬어. 사옥 엄청 좋던데."

    "사옥 투어를 해줬다고?"

두 명이상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게 맞을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엘레노어도 그런 반응이었는데."

    "모든 면접자들에게 시간 낭비하지 않지."


 이 말 때문에 나는 면접이 끝나고 엘레노어에게 이메일을 다섯 번 보냈다. 매일매일 보낸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보냈다.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엘레노어에게서 새로운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고 왜 연락이 안 오는지 혹시 허만과 다니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엘레노어는 무사한지,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왜 왜 끝없는 물음표로 곡괭이질을 하며 터널을 파내어 나를 깊은 곳으로 더 더 몰아넣었다. 그렇게 6일은 앉아서,서서, 누워서 물음표 곡괭이질만 하다가 7일째에 이메일 하나를 최대한 심심하게 써보는 것이다.


안녕 엘레노어

잘 지내고 있길 바랄게. 지난번에 면접 봤던 회사에서 혹시 연락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이메일을 써. 내가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면접 결과에 상관없이 피드백이 있었다면 알려주기를 바랄게.

좋은 하루 보내!

춥다물로부터


그리고 다시 곡괭이질에 돌입한다. 2주가 지났을 때는 전화도 걸어봤다.

    "안녕 엘레노어, 나 춥다물이야."

    "응 안녕."

    "혹시 면접 결과가 나왔는지 연락해 봤어."

    "아니 아직."

    "아 그래, 혹시 언제쯤 알려준다고 들은 게 있니?"

    "아니 없어."

    "응. 그래... 알았어. 혹시 연락 오면 알려줘. 고마워!"

    "그럴게!"

 전화가 끊겼다. 엘레노어가 전화를 빨리 끊고 싶어 하며 그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게 회선을 타고 전달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성공했다고 오해했던, 실패한 면접은 이렇게 대답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나는 잠수 이별 같았다. 나는 그렇게 5주를 더 매달렸다. 엘레노어는 4번째 이메일부터는 더 이상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나만 사랑이었어? 기대가 컸던 내 짝사랑은 잠수이별을 당하고 나에게 더 큰 시련을 당연히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 다른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 링크드인에 프로필 업데이트를 했을 때 그가 보낸 초대를 수락하지 않고 그냥 읽씹 할 수 있었을 때, 아주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던 걸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당분간 다음 화에 계속

이전 12화 두 번째 면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