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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Jul 10. 2024

세 번째, 네 번째 제안

김밥 vs 비빔밥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거야.
<메기, 이옥섭 2018>



구덩이를 헤매고 있었다. 깜깜한 바닥만 보고 길을 찾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화벨 소리가 나는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구덩이 바닥까지 닿지는 않는 밧줄이었다. 남아 있는 힘을 다 짜내서 힘껏 점프를 했다. 그러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보니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 으.... 으아아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눈이 떠졌다. 8시 30분이다. 전화벨이 정말 울리고 있다.

베드테이블 위에 있던 물을 얼른 들이켰다. 그리고 흠흠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으려고 하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오랫동안 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전화 버튼 오른쪽 위로 빨간색 숫자 '1' 나타났다. 음성메시지로 들어가 본다.

    "안녕 춥다물, 나는 비스포크의 톰이라고 해. 너에게 딱 맞는 일이 있어서 전화했었는데, 시간 될 때 다시 전화해 줘.-삐이이이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악몽에서 좀 깨어나야 했으니까.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얼른 세수와 양치를 하고 아아아 아아아 오늘 처음 하는 대화가 아닌 것처럼 목을 깨운다.  전화를 받은 톰은 ‘작은 회사’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림 쇼(Grim Shaw)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던 두 사람이 최근에 새로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설립한 전망이 있는 회사라고 했다. 처음으로 직원을 뽑는 것인데, 글로벌 프로젝트 경험이 많고, 컨셉디자인을 많이 해봤고 2D, 3D 소프트웨어 사용도 자유자재로 가능한 사람이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밧줄을 당겨 조금씩 올라왔다. 다리도 팔도 조금씩 움직였다. 깜깜한 구덩이에 몇 주간 있었더니 눈이 부셨지만 그것도 금방 익숙해졌다. 마침내 구덩이 밖으로 팔을 뻗었다.

    "다 올라왔다."

    "응?"

    "아 아니야. 응 계속 말해줘. 나 관심 있어."

 톰은 바로 JD(Job Description)을 통화를 하면서 보내줬다. 홈페이지는 대표 이미지만 있었다. 하긴 이제 회시를 설립했다고 했으니 작업 이미지가 없겠지. 전화기를 귀와 왼쪽 어깨에 낀 채로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주소를 복사해서 구글 맵에 붙여 넣었다. 올드 스트리트에 있네. 어? 회사 바로 옆에 김밥집이 있다.

    "(점심 먹기) 좋은 위치에 있네."

    "응 디자인 회사도 많고 시내 중심가지."

    "궁금하다.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저 김밥집도)."

    "그래 그럼 너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공유할게. 그리고 연락이 오면 다시 전화할게!"


 잠시 후 비스포크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안녕 톰."

    "안녕 난 톰이 아니고 캐롤라인이야."

    "아 미안해, 방금 톰이랑 통화해서 그렇게 생각했어."

    "괜찮아! 회사 대표번호니까. 너에게 추천할 회사가 있어서 전화했어."


 캐롤라인은 바로 이메일로 회사의 링크를 보냈다. 캠든에 있는 멋진 사옥을 가진 건축 회사라고 했다.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가 본 그 회사의 홈페이지는 디자인이 잘 된, 홈페이지 담당이 따로 있는, 큰 디자인 회사의 그것이었다. ABOUT을 읽어보고 PEOPLE란에 들어가서 본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은 모두 같은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전문적이다. 회사의 규모가 웬만큼 크지 않고서는 이렇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까. 주소를 복사해서 구글 지도로 옮겨놨다. 역에서 금방이네. 크게 확대 하자, 옆에 글자가 새롭게 보인다. 'BIBIM'? 비빔? 에이 설마 하며 클릭해 보니 상세페이지가 떴다. 'BIBIM/한식당, 리뷰 평점 4.5' 정말 흥미로운 날이다. 아니 그냥 2024년엔 세계 어디 골목에나 한국식당이 하나씩 생긴 걸까?


    "응 나는 잘 몰랐던 회사지만 굉장히 큰 회사네(비빔밥집도 바로 옆에 있고)?"

    "영국에서 Top10에 드는 회사야"

    "그렇구나, 응 그들이 하는 프로젝트가 내가 했던 것들이랑 비슷하다."

    "응 맞아, 지금 대규모 상업시설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구하고 있어. 네가 런던에서 했던 일이랑 연관되어 있어서 네 포트폴리오를 좋아할 것 같아."


 그렇게 그날 같은 에이전시의 두 명의 다른 담당자로부터 두 개의 다른 회사의 제안을 받았고 다음 날 두 회사 모두에게서 면접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주 작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을 하는 회사와 아주 크지만 ‘인테리어’를 하는 회사. 그리고 김밥과 비빔밥의 대결이다. 나는 메모지에 이렇게 썼다.


톰,  건축, 김밥

캐롤라인, 인테리어, 비빔밥


나는 김밥쳐돌이다.


-당분간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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