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해요, '당신'에게.

<시녀 이야기>를 읽고

by 고라니

여성에게 가장 지옥 같은 소설이라는 <시녀 이야기>가 놀라운 점은 소설 속 끔찍한 면면이 어딘가에서 보았던, 들었던 실제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과거, 그리고 현재 어디에 선가는 여전히 소설처럼 살아갈 누군가가 아직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이 생존자의 피맺힌 절규의 기록의 형태라는 점이 크게 남는다. 모든 자유와 사유가 금지된 상황에서도 기억하기 위해 괴롭지만 끊임없이 되뇌고 되새기는 누군가가 있고 그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어 전해진다는 것, 인류에게 이보다 값진 유산이 있을까.


배경이 미국이라는 점, 그리고 그 미국이 현재의 부유하고 세계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모습이 아닌 망가진 환경과 생태에 마치 초기 이민자 사회처럼 극빈한 청교도주의의 모습인 것도 인상적이다. 그 길고 지난했던 이념과 분쟁을 거쳐 인류 역사의 수많은 지배 이념 중 마치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중세 기독교 국가를 선택한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지배계층이 통치하기 가장 편한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교육을 금지하고 계급을 만들고 감시자를 두어 서로를 반목하게 만들고 잔인한 본보기를 끊임없이 게시하며 공포와 무력감을 학습시킨다. 1985년에 발간된 이 책은 근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묘사한 세계가 낯설지 않고 촘촘하고 정교해 여러 불편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이 책이 아마존 판매 1위를 기록한 것도 이런 기시감이 이유였을 것이다. 소설의 초반부 주인공은 일본인 관광객들을 길에서 마주치는데 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여성들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자유로움과 풍요의 상징인 미국과 보수적인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의 바뀐 전복적인 설정 장면에 실소가 나온다.


이 나라의 주된 차별의 대상은 여성으로, 마치 본보기를 보여주듯 철저히 억압한다. 계급은 4개로 나뉘어 지배층의 아내가 되는 귀족, 지배층의 아이를 낳아주는 역할을 하는 시녀,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하녀,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이 있다. 주인공은 시녀로, 빨간 옷과 신발, 장갑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흰 모자를 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존재해 왔으나 이를 주홍글씨처럼 가시적으로 눈에 띄도록 만들고 분리된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어 내다니, 불편함이 시작된다. 환경오염으로 불임이 많아지고 따라서 가임기의 여성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지배층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마치 우성유전의 목적인 듯 자녀가 없는 그들의 집에 배정되는 시녀들은 배란기에 권력자와 그의 아내와 함께 관계를 갖는다.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경우 다른 집으로 배정되고 가임기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지속해야 한다. 그들은 '두 발 달린 자궁'으로 아이의 잉태가 존재 이유다. 오로지 생식의 도구일 뿐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 도서관에서 일하며 딸과 남편과 살았던 주인공은, 새로운 나라로 바뀌고 시녀가 된 후 두 번째 집에 파견된다.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는 듯 조용히 지내지만 가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그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면 방사능 지역으로 내쫓길 위기의 상황이다. 단조롭고 끔찍한 하루하루에 과거의 여러 시점을 넘나들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순간들은 일상의 소소한 한때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을 밤마다 보물처럼 되뇐다. 엄마의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을 떠올리고 동경하던 멋진 친구를 그리워한다. 사랑하는 어린 딸을 생각한다. 권력자인 사령관은 법에 어긋나지만 주인공과 '스크램블' 게임을 하고 대화를 하고자 한다. 사령관은 부인은 그녀를 혐오하면서도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해 제안을 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을 제외한 이 국가 시스템의 모든 사람이 피해자다. 사령관의 부인은 젊은 시절 가수 출신으로 이젠 늙고 남편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는다. 아이가 없어 시녀를 들였고 매 관계마다 자신의 무능력을 내재화한다. 이 시녀는 첫 번째가 아니다. 이런 관계는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안긴다. 아마 오랜 시간 그랬을 것이다. 고위층의 여성도 피해자다. 남자들 또한 억압의 대상이다. 고위층이 되지 않는 한평생 여자를 만날 수 없다. 자신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동성애자, 다른 종교, 낙태, 모두 가차 없이 처형된다. 그리고 성벽에 며칠이고 목이 매달린 채 전시된다. 고발과 처형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세상은 모두에게 지옥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처럼 수록된 주해는 이로부터 200년 후 다른 국가가 들어선 후 열린 어느 회의의 내용이다. 시녀는 도망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생존자의 관점에서 녹취 테이프로 남겼고 유물처럼 후손들은 그 내용에 대해 추론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러나 그 학회는 남성 중심의 조직이며 조직장이 여성임에도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상은 달라져도 차별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관성처럼 끈질기게 들러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름도 모를 그녀가 남긴 이야기는 모두인 '당신'인 우리에게 닿았다. 알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알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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