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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달 Sep 16. 2022

산타를 만나다

D+65, 핀란드 로바니에미


핀란드에는 산타클로스가 산다. 물론 크리스마스 즈음에서야 대부분의 부모가 산타클로스가 되지만, 핀란드의 산타는 조금 다르다. 무려 '정부 공인' 산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라는 두 고래 간 싸움에 낀 핀란드는 국토 상당수가 전화를 입었다. 그중에서도 핀란드 중부의 작은 도시 로바니에미는 90% 이상이 파괴됐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핀란드 정부는 이 도시를 어떻게 되살릴지 고민했도, 원래 북극권 어딘가의 숲 속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던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로바니에미에 살고 있었대!" 하는 식으로 마케팅했다고 한다. 뭐 로바니에미만 넘으면 바로 북극권이니까 크게 거짓말은 아니고. 결국 로바니에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마을이 됐다는 이야기.


호숫가를 따라 올라오다 그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 로바니에미를 찾았다. 산타 마을은 로바니에미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핀란드 정부가 고용한 나름 공무원(?)인 산타클로스와 그의 업무를 도와주는 똔뚜(엘프)들이 산다. 정식 우체국도 있는 이곳에 성탄절 즈음이면 전 세계 어린이들로부터 편지가 도착하고, 엘프들이 공식 산타의 답장을 직접 보내준다고 한다.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한참 남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약간의 대기시간을 거쳐 산타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산타클로스의 그 모습. 볼록 튀어나온 배, 넉넉한 풍채, 흰 머리칼과 수염을 자랑하고 코 위에는 얇은 금테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날 반겼다. 수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데, 실제 자기 수염이라고 한다.


나는 산타에게 내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해항에서 출발해 이곳에 오기까지의 이야기. 그는 가끔은 놀라며, 가끔은 즐거워하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짧은 대화 끝 안녕을 말하기 직전 나는 산타에게 물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어. 산타, 너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행복이란, 좋은 감정 상태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뭔가 멋진 말을 기대했는데, 조금은 맥이 빠졌다. 뻔한 대답이랄까. 그러나 어찌 보면 행복은 원래 뻔하고 단순한 것인데, 우리만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엔 이런 말이 나온다. 산타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엔 스스로 산타가 되는 것이 삶이라는. 열 살 무렵 산타를 여전히 믿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누가 물어보면 나도 산타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고, 지금까지 쭉 산타를 '믿지 않는' 단계에 와 있다. 내 주변의 모두가 같은 단계에 있을 테다. 또는 누군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사랑하는 이의 산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겠지.


그러나 꼭 앞으로만 가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 여전히 산타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세상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선한 믿음. 순수함이나 낭만, 희망에 대한 덧없지만 우직한 상상력. 산타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스스로 산타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보다는, 군데군데 산타를 믿는 바보들이 끼어있는 사회가 조금 더 살만한 사회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산타와 찍은 사진을 사려면 30유로(4만원) 이상 지불해야 하는데, 고맙게도 산타가 공짜로 주었다. 그는 "멋진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 데 대한 선물이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셈인가. 우체국에 들러 나에게 작은 키링을 선물해주고, 소중한 친구에게 12월 25일에 도착하는 편지를 썼다. 늦여름의 크리스마스. 한껏 쪼그라든 마음이 꽤 넉넉해졌다.


로바니에미를 지나면 북극권에 들어간다. 지금도 꽤 추워서, 밤에는 6도까지 떨어진다. 슬슬 캠핑을 하기 어려운 날씨가 되어간다. 원래는 8월 중에 북유럽을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중간에 한국을 다녀오고 러시아에 푹 빠지는 바람에 일정이 지체돼 9월의 북유럽을 만나게 됐다. 뭐, 무슨 상관인가. 기왕 이렇게 됐으니 오로라를 보고 가야지. 겨울을 날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본 여행기는 지난 2019년 6월 30일부터, 2020년 1월 22일까지 떠났던 여행의 기록입니다.

동해항에서 배에 차를 싣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를 횡단했고, 북유럽과 동유럽, 중부 유럽과 발칸 반도를 거쳐 남유럽까지 여행했습니다.

그러곤 터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유럽의 해안도로를 따라 포르투갈 호카곶에서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이스라엘과 이집트, 터키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여행일수: 207일

총 주행거리: 34,888km

여행 국가: 러시아 등 22개국

여행 루트: 러시아 → 핀란드 → 노르웨이 → 스웨덴 → 덴마크 → 독일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헝가리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 → 불가리아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스라엘 → 이집트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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