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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달 Oct 18. 2022

너무 화창한 날의 아우슈비츠

D+109, 폴란드 오슈비엥침

    트렁크를 열고 캐리어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검은 코트를 꺼내 입었다. 며칠 새 차가워진 공기를 맡으며 조금은 차분한 느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액셀을 밟고 작은 시골 마을로 향한다. 크라쿠프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 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라고 부른다.


    대지는 그곳에서 살았던 이들에 의해 색칠되고 기억된다. 쇼팽이 살았던 바르샤바, 뭉크가 살았던 오슬로, 푸시킨이 살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거쳐갔던 런던과 파리.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에 의해 정의된다. 처음엔 노동을, 나중엔 절멸을 강요받았던 유대인과 사회의 비주류들. 삶은 여러 색깔을 갖지만 죽음은 빛이 없어 검은색 하나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검은 옷을 차려입는다. 색을 잃은 망자의 옆에 서기 위해.


    성수기도 아닌데 아우슈비츠는 사람들로 붐볐다. 꽤나 기다린 끝에 가이드의 설명이 딸린 입장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다른 생김새의 여행자들이 줄을 늘어서 입장을 기다렸다. 색색깔의 개성은 잠시 넣어두고 대부분이 약속이나 한 듯 검은 옷을 차려입은 채로. 주로 실내를 돌아다니겠지, 하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수용소를 돌아다니는데 4시간이 걸렸다. 아주 일부를 걸었을 뿐인데.


가이드를 따라 수용소를 돌아다녔다. 곳곳에 '정지'라고 적힌 푯말이 있었다.

    철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수용자들을 실어왔던 가축용 열차를 만났다. 열차에서 내리면 공터에서 '감별'이 진행된다. 관리인의 무표정한 손짓에 누군가는 왼쪽으로, 누군가는 앞으로 걸어간다. 왼쪽으로 가면 수용되어 노동에 투입된다. 직진하면 샤워헤드가 달린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갈색 벽돌로 질서 정연하게 지어진 똑같은 모양의 건물들, 중간중간 세워져 있는 감시탑, 곳곳에 세워져 있는 '정지' '주의' 같은 푯말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다. 날이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죽음으로 가는 문턱에 이제 막 도착한 이들에게도 하늘은 오늘처럼 속절없이 파랬을 것 같아서. 진짜로 멈춰야 했던 이들은, 정말로 주의해야만 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수용자들은 가축용 열차를 타고, 공터에서 감별됐다.

    안쪽 박물관의 유리벽 안에는 수천 킬로그램의 머리카락이 쌓여 있었다. 나치는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으로 섬유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다른 방에 있던 8,000개의 신발, 이름 적힌 가방들. 어딘가로 끌려가면서도 서둘러 챙겨 넣었던 짐과, 혹여나 섞일까 이름까지 써넣은 가방들. 그 사소한 꼼꼼함과 억척스러움은 관리인의 떡고물이 되고, 주인 잃은 신발만 산이 되어 쌓여 있었다.



    짧은 여정을 마치며 가이드는 우리에게 물었다. 지구에서 폭력이 사라진 단 하나의 도시라도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70년 전의 독일을 심판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베를린, 바르샤바, 카우나스와 크라쿠프를 거쳐 아우슈비츠까지, 나는 홀로코스트의 궤적을 좇고 있다. 아니 어쩌면 군대에서 바우만의 책을 읽었던 그때부터. 광주와 제주, 단원에 갔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부터. 또는 기억도 희미한 어린 날의 어떤 결핍으로부터. 나는 어떤 죽음들에 천착하고 있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우슈비츠를 빠져나와 슬로바키아를 통과, 밤늦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헝가리는 폴란드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끈끈하지만, 동시에 나치에 의해 세워진 괴뢰정부가 전쟁범죄를 일으키기도 했다. 어디에도 전쟁의 흔적이 부재하지 않는다. 요즘은 켜켜이 쌓인 그 흔적을 훑는 여행을 하고 있다.





본 여행기는 지난 2019년 6월 30일부터, 2020년 1월 22일까지 떠났던 여행의 기록입니다.

동해항에서 배에 차를 싣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그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를 횡단했고, 북유럽과 동유럽, 중부 유럽과 발칸 반도를 거쳐 남유럽까지 여행했습니다.

그러곤 터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유럽의 해안도로를 따라 포르투갈 호카곶에서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이스라엘과 이집트, 터키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여행일수: 207일

총 주행거리: 34,888km

여행 국가: 러시아 등 22개국

여행 루트: 러시아 → 핀란드 → 노르웨이 → 스웨덴 → 덴마크 → 독일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헝가리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 → 불가리아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스라엘 → 이집트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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