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00원을 낳는 세탁기

by 작은물방울

나는 주말을 좋아한다. 특히, 아무런 약속도 없는 주말을 사랑한다. 바쁜 주중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때는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였다. 진짜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이 나서 집 근처 나만의 최애 카페에서 2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했다. 물건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감과 동시에 나의 마음은 차츰 안정되어 갔다. 정말 여유로웠다.


신혼 초,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빨래를 돌린다. 특히 시간이 여유로운 주말에 한꺼번에 세탁기를 돌리는 편이다. 주중은 바쁘기도 하고, 늦은 시간에 귀가하기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기 힘들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저녁 8시 이후에 세탁기 돌리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안내문을 본 탓도 있었다.


햇살을 내 눈에 닿아 부서지는 그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에 나는 빨래를 했다. 날씨도 빨래를 말리기 딱 좋았다. 햇볕에 말리는 빨래를 생각하니 옷뿐 아니라 나까지도 쾌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빨래.jpg 토요일 오후 빨래 타임



남편의 바지, 내가 입었던 옷들, 수건들, 그리고 속옷은 빨래망에 담아서 세탁기에 넣었다. 대충 분류했지만, 그날은 힘들어서 그냥 한꺼번에 넣었던 것 같다. 세탁기의 동작 버튼을 눌렀다. 이제부터는 세탁기가 일할 차례이다. 나의 일은 빨랫거리들을 세탁기에 넣는 것이었다. 잠시 후 '딩동 딩동' 자기의 일을 다 마쳤다는 세탁기의 알림음이 들렸다. 다시 내가 나설 차례였다. 즉, 빨래를 건조대에 너는 건 나의 몫이란 소리이다.


빨래를 통도리 세탁기에서 하나씩 꺼내어 건조대에 널고 있었다. 청바지도 널고, 일주일 동안 입었던 고마운 옷들도 널고, 샤워 후 나의 몸의 물기를 제거해준 수건도 널고, 그리고 나머지 양말들을 널었다. 순간 몰입했다. 때론 단순 반복의 일이 몰입도를 높이게 하니까. 그리고 마지막 양말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못 볼걸 보고 말았다.


텅 비어야 하는 빨래통 안에 500원짜리 동전이 '떡'하게
아니, '댕그랑' 남아 있는 것 아닌가?



500원 낳는 세탁기_1.jpg 오늘 글을 위해 재현한 사진이다. 이렇게 세탁기 안에 500원짜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아니, 빨랫거리 내놓기 전에 당연히 주머니를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동전이 빨래하는 동안 빨래통 안에 돌아다녔던 거잖아, 세탁기 고장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남편 탓을 잠깐 했다.



그러다가 순간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빨래 통에 있는 500원짜리 동전을 들었다.

진짜 해맑게 웃으며,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달려갔다.

최대한 신나고 약간의 하이톤의 목소리로 해맑게 말했다.


"빨래를 다 돌리니 500원짜리가 나왔어~"



길가에서 돈을 주운 것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황금알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빨래통 안에서 발견한 500원을 소개했다.


나의 유머를 재빨리 알아차린 신랑은 이렇게 답했다.

"또 돌리면 500원이 나오겠네~"

그러면서 신랑은 세탁기의 손익분기점을 계산했다. 즉, 한 번 돌릴 때 500원의 이익이 발생하고, 빨래를 한 번 돌리는데 드는 비용(세제와 전기값과 물값)을 대략 측정하더니 말했다.


"우와~ 한번 돌릴 때마다 돈 버는 거다~"




세탁기.jpg 500원을 낳는 세탁기가 이렇게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픽사 베이)



재미있었다. 자칫 짜증과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일들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신랑과 신혼초에 함께 지내며, 신랑도 실수를 했겠지만, 내가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던 것 같다. 내가 잘못을 했을 때 신랑도 나의 '탓'을 하며 화를 내기보다, 유머 있게 넘어가거나 눈치껏 넘어가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 아빠나 엄마 또는 신랑이나 아내, 아니면 이성친구와 심각하게 잘못한 일 아니면, 싸우지 말고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 건 어떨까?



친한 친구와 다퉜는가?

엄마와 말이 통하지 않아 거리감을 느끼는가?

배우자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가?


그렇다면, 생활 속 작은 유머를 찾아내어 그 상황을 타파해보는 건 어떨까?



어차피 평생 갈 인연인데, 다투는 것보다 웃고 유머러스하게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그날 우리 집 세탁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500원을 낳는 세탁기’가 되었다.

그날 하루만 말이다. (제발 하루로 끝났으면 좋겠다.ㅋ)




*신혼 초, 에피소드를 쓴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