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방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적는다. 이 드라마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천제적인 두뇌로 변호인이 된 우영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폐를 가진 사람이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10화에서 하고 있다. 자폐를 가진 사람은 사랑에 조금 더 조심스럽고, 타인이 보기에 사랑이 아닌 착한 성격 때문이라고 믿어질 수 있다는 거, 또는 자폐를 가진 사람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접근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거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폐는 아니지만, 나 또한 정신과 진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2011년 조울증 진단을 처음 받고,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확실히 무너졌다. 대학원까지 키운 딸을 정신건강병원에 그것도 폐쇄병동에 입원시킨다는 게 얼마나 처절한 마음일지 나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렵다. 반면, 나의 경우는 세계가 혼돈스러웠다. 사랑에 빠진다는 거 꿈도 꾸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견디어지다 보니 세월이 지난 거라고 생각한다.
조울증 환자는 사랑할 수 있을까?
조울증을 앓고 천천히 사회에 회복하기 시작했다. 끝내 취업하지 못한 나는 공인중개사 학원을 다녔다. 아빠가 상가를 여러 개 보유하고 계신 점도 있었고, 고모의 권유도 있었다. 부동산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그런 믿음에 권하셨다. 첫 해에는 그저 오프라인으로 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 나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겨우 1차에 합격하고, 다음 해에 2차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의구심이 들면서, 한편으로 좋기도 했다.
조증이 심할 때는 나를 두고 학교에서 제적 회의도 했을 정도였다. 친구들도 팔 할은 떨어져 나갔다. 말과 행동이 이상해지는 걸 보고, 친구들은 하나 둘 연락을 끊고 나를 피했다.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나의 곁에 남았다.
나에게 첫눈에 반한 사람과 조심스레 연애를 시작했다. 하루가 48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고, 꿀 떨어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단지, 만난 지 3일밖에 안되었지만, 보름 이상은 만난 것 같이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정확시 숫자상으로 삼일 째 되던 날이었다. 행복했던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되던 날.
"초롱이는 손이 없어, 그니깐 가방은 내가 드는 거야 알았지?"
오글거리지만, 나의 애칭은 초롱이였다. 눈이 초롱초롱하다고 해서 지어준 애칭이었다. 그는 내 가방을 잘 들어주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가방 안에는 공인중개사 책이며, 이것저것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짐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정말 무거웠는지 가방 안을 보게 되었다. 나는 숨겨야 할 것들을 안 보이는 곳에 잘 숨겼기에 별 거리낌 없이 있었다.
가방 안을 살펴보던 그의 눈이 휘둥그래 해졌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 아파?"
갑자기 마음이 땅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이어 그가 말했다
"처방전이 있네."
'아차!'
숨겨야 할 것. 즉, 약은 안 보이는 곳에 잘 숨겼는데, 그만 처방전 한 장 짜리 종이를 숨기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 아파?"
"어디 아픈지 알려줘."
자꾸만 묻는 그였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끊임없이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았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질문하는 그였다.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긴긴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는 걱정 한 가득을 안고 있었고, 나는 초조하고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이걸 말해야 하나?'
'가벼운 감기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증상이 하나도 없잖아.'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사실대로 말할까?'
'3일이란 시간은 나의 병을 밝히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데.'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사실을 말할지 말지 과장해서 수천 번이나 고민했다.
워낙 숨기는 걸 잘 못하는 나는 드디어 큰 결심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기로.
"사실 나 마음이 아픈 병에 걸렸어.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가야 하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해. 안 그러면 너무 아파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
나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의 치부를 3일 만에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다 내가 부주의한 탓이었다. 자책하고 있었다. 순간 아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때 나와의 일촌을 끊고, 나의 연락을 피했고, 더 이상 나와의 만남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도 그들과 같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최대한 적은 상처를 받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의 반응을 잠잠히 기다렸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기에.
그런데 그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그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한번 숨을 내쉬더니, 나를 꼬옥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 품이 정말 따뜻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르고, 한 발 짝 뒤로 간 그는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리 엄마도 아프셔서 내가 잘 알아. 그런 아픔은 주변 사람이 정말로 잘해줘야 해. 내가 정말 잘할게. 내가 진짜 잘할게."
진심이 담김 그의 말에 갑자기 나도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에게 잘해주겠다는 그의 맹세 앞에서 나는 울고야 말았다. 나의 치부를 드러냈기에 나의 상처를 드러냈기에 아렸지만 참 따뜻했다.
난 3일이란 시간을 신뢰를 쌓기에 나의 병을 인정하기에 짧은 시간이라고 정의했었다. 하지만, 가끔 사랑의 힘은 놀라울 때가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사랑 중력의 힘의 크기는 컸다. 난 그날 깨달았다. 진실한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의 달달했던 사랑고백과 나의 씁쓸한 병의 고백이 엉켜져서,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견고해져 가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그가 나의 매력이 끌렸던 사랑에서, 나도 그의 진실함에 끌리게 되는 사랑으로. 이제 더 이상 그의 일방적 사랑이 아닌 쌍방향적 사랑으로.
나의 고백 이후 그와 나, 서로의 감정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나의 꼭꼭 숨겨두었던 빛나는 마음상자가 열리게 되었던 사건이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할 자유가 있다. 난 정신장애를 겪어서 조현병이어서 조울증이어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나의 하나의 에피소드(그때는 남자 친구이었지만, 지금은 남편입니다.)가 누군가에서 희망의 빛이 되어, 처음부터 꿈꾸지 않는 삶이 아닌 찬란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영우를 보고 나서 떠오른 나의 고백 그리고 그의 고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에 희망 한 스푼 더 더하고 싶었다. 사랑을 포기하지 말자고 외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