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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Jan 24. 2023

에스컬레이터에서의 예의

내가 몰랐던 에스컬레이터에서의 예의



난 배려의 아이콘.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참으로 남을 생각한다. 조용한 카페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졌을 때, 우리 테이블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괜스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조금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의 통화도 마찬가지다. 핸드폰에서 전화가 오면,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금방 끊는다.(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아주 조용한 지하철에서는 주로 그런다.) 그런 내가 정말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막 내린 지하철역사, 지상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에스컬레이터 앞에서였다.


출처: 픽사베이 



매번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지하철이 정거한 뒤, 사람들이 질서 없는 형태로 잔뜩 에스컬레이터로 몰려든다. 빨리 자신의 목적지로 가고 싶은 사람들의 당연한 욕구 일 것이다. 그 모습이 나에게 너무도 압박이었다. 그래서 걷지 않는 줄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앞사람 바로 다음 칸에 내 몸을 올렸다. 앞사람이 커다란 백팩을 멜 때면 정말 당황스러웠다. 약간 엉거주춤한 상태로 한 계단 위에 에서 레일을 잡으며 내 몸을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아마 신랑이랑 지하철을 탔던 것 같다. 그때 신랑은 앞사람 뒷 계단에 발을 올리려는 나에게 정말 중요한 말을 해 주었다.



에스컬레이터는 한 칸 띄고 타는 거야!


아! 이 얼마나 멋진 생활의 지혜인가. 항상 고민했던, 항상 갈등을 야기시켰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신랑의 한 마디였다. 그 뒤로 나의 지하철 삶은 훨씬 편하고 아늑해졌다. 뒤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뒤엉켜져 있어도, 그 한마디를 떠올리면서 한 칸 띄고 탄다. 전에는 계단 한 칸이 단지 나의 이기적인 공간이라 생각했다. 이 일화를 독서모임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독서모임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한 칸 띄고 타는 게 맞아요.



이런 말을 하시면, 본인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지하철 역사에 사람이 한가득 꽉 차있는데,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다닥다닥 사람이 붙어있었다. 정말 발 디딜 공간이 없는 플랫폼 위로 끊임없이 사람이 내려가니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엉켜져 넘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에스컬레이터는 다닥다닥 타는 게 아니라 약간의 여유공간을 마련해서 타야 한다고 말이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칸을 띄지 않고 타는 것이 진정한 배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만의 공간확보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칸 띄고 타기는 진정 내 삶의 철학이 되었다. 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앞이면, 이 말을 항상 상기시킨다. 



한 칸 띄고 타자! 나를 위해, 모두의 안전을 위해!







p.s. : 


1. 이 글을 올리기 전에, 에스컬레이터 타는 법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2002년에 바쁜 사람을 위해 한 줄을 비워두고 서는 한 줄 서기 운동을 했다가, 2007년에 안전을 위해 두 줄 서기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네요. 지금은 한 줄 서기를 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에스컬레이터 타는 법에 대한 매뉴얼이 정확이 검색이 안 되는 게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혹시 관계부처나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에스컬레이터 타는 법이나 엘리베이터 타는 법에 대한 것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검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2. 예전에 친구가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분이 비좁다고 엄청 뭐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엘리베이터의 용도는 사람을 이동시키는 면도 있지만, 임산부나 유모차등을 끄는 사람들이 우선 이용하게 하는 면도 있잖아요. 요즘은 애완견도 많아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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