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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은을 버린 여자

by 작은물방울
은을 버린 여자.jpg

<“나는 내 손으로 은을 만들었고, 이제는… 돈의 흐름을 깎아낸다.”>



서울 청계천.

작고 오래된 은세공 공방.

그 안엔 낡은 작업대, 은가루 묻은 장갑,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은판돈, 54세.

30년을 금속과 함께 살았다.

손끝 하나로 반지를 깎고, 팔찌를 조였다.


그날은 달랐다.

마지막 반지를 완성한 그녀는 조용히 망치를 내려놓았다.

눈앞에는 누렇게 빛나는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효라클: 주식 시장은 되돌아 온다 』

지은이: 문베스트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다.

책 속의 남자는 단 한 번도 뉴스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뉴스를 만들고, 그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손으로 책을 덮으며 말했다.

“이 사람, 진짜일까?”

“이 사람… 내 은보다 더 정확하게 흐름을 깎을 수 있는 사람일

까?”


그녀는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공구를 정리했고,

모은 은을 팔았다.

30년을 담은 금속 대신, 주식 계좌를 열었다.


며칠 뒤, 강남의 VIP 투자 라운지.

익숙한 얼굴들 사이로 낯선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색 옷차림, 눈에 띄지 않는 외모, 그러나 뭔가… 단단한 기운.


“여기가… 효라클이라는 분이 계신 자리인가요?”


모두가 돌아봤다.

쩐물림은 표정 없이 컵을 내려놓았고,

백기만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문베스트는 갑자기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그 책을 보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사장님 책, 잘 봤습니다.

사실… 그 책이 제 삶을 바꿨어요.”


문베스트는 말문이 막혔다.


“전 원래 은 세공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의 결을 깎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은판돈입니다.

은을 버리고, 돈을 택한 여자예요.


효라클님,

당신의 흐름…

저도 깎아볼 수 있을까요?”


효라클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엔딩 내레이션 – 은판돈)
“내 손끝은 0.1mm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으로, 이제는
0.1%의 시세 차이를 잡아내려 한다.
나는 더 이상 은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돈을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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