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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생리통 아파하는 남편

by 작은물방울


굿을 해서 병을 낫게 한다거나, 점을 보는 등 미신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가끔은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마치 일요일 오전 11시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일들이 말이다.



하트.jpg 그림출처: 픽사 베이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전 친구의 에피소드를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은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원인모를 아픈 증세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일을 할 때도, 소개팅을 할 때도 계속 원인 모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어쩌다 우연히 헤어진 남자 친구를 만났는데 그 남자 친구도 친구와 비슷한 증세로 아팠다고 한다. 그들 커플은 그때 원인모를 병의 이름을 상사병이라 일컬었다. 그들은 다시 연인으로 거듭났고, 결혼까지 골인해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금 시대에 상사병이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하지만, 이것보다 더 미스터리 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나 대신 생리통을 아파하는 신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생리통을 대신해준다는 소리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다. 학원에서 만난 언니가 우스갯소리로 해준 이야기이다. "생리기간만 되면, 엄마가 무릎 쪽이 아프다고 하시더라. 어제도 어김없이 엄마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시며, 너 생리하지?라고 물어보셨어. 매직 기간이긴 했거든." 사실 난 이게 진짜 있는 일이라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볍게 대신 생리통을 앓는다는 이야기는 내 귓속에 들어갔다, 훅 흘러나왔다.



help.png 그림출처: 픽사 베이. 생리통은 어떨 때는 진짜 아프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여름이었다. 그때 남자 친구(현 신랑)는 나를 진심으로 열렬히 사랑했던 것 같다.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만난 그 사람과 난 학원 근처인 강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날도 어김없이 강남에 갔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밥 먹고, 카페에 들렸다가 지하철로 향했다. 난 한 달에 한번 걸리는 마법 기간이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이 춥고 싫게 느껴지는 정도. 내가 에어컨 바람이 춥다고 하자 남자 친구는 자기는 한 번도 에어컨 바람이 싫거나 추운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잠시 후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 안에서 그는 급격히 컨디션이 안 좋아졌고, 살면서 처음으로 에어컨 바람이 춥다고 했다. 심지어 식은땀도 났었다. 느낌적 느낌으로 나의 생리통이 이전되었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설마 했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남자 친구이었고, 지금은 신랑이 된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내 생리통을 앓았다. 사실 이 말이 진짜 어이없고 미스터리하고 웃기는 거 안다. 지금은 우리가 결혼한 지 6년 차인데, 지난달 생리통도, 지지난달 생리통도 신랑은 아파했다. 아랫배가 살살 누르듯이 아프다며, 나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신기한 건 신랑이 아픈 만큼 내가 덜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더 미스터리 하고 재밌는 건 아픔의 정도가 꼭 와이파이 같다는 거다.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을수록 전가되는 아픔이 희미해지고,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전되는 아픔이 진해진다는 것!




생리통뿐이니라 가끔 두통도 전이된다. 오늘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소파에 기대앉아있었는데, 옆에 앉은 신랑이 앉은 지 5분 정도 되자 말했다. "나 머리가 아파"


신기하게 난 머리가 덜 아팠고, 세상이 조금은 환해졌다. 신랑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물음표_생리통.jpg 출처: 픽사베이, 궁금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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