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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Jun 27. 2021

기술의 방향

소비자의 선택

회사에 연구개발 직종으로 오랜 시간 있다 보면 다양한 기술을 새로 시작하기도 하고, 성숙시켜서 제품까지 완성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접는 경우도 많다. 연구소에서 100개의 기술이 개발실로 넘어오면 그중 10여 개를 선택하여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실제 제조에 넘기는 기술은 1~2개이다.


그럼 과연 어떤 기술이 제품까지 성공해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오랜 시간 소비자에게 사랑 받는 기술일까?

그리고 그것이 잠깐의 성공이 아닌 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이란 무엇일까?

20여 년 디스플레이 업계에 있으면서 거시적인 기술의 흐름과 미시적인 기술의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과연 어떤 요소들이 그 가운데 성공과 실패를 좌지우지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PDP와 LCD 


  20여 년 전 브라운관 TV가 각 가정에 한 대씩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을 때, 이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평판 디스플레이로 PDP와 LCD 전쟁

먼저 시장에 나온 기술은 PDP 였다. 글라스 두장 사이로 플라스마에 의해 빛이 나올 수 있는 GAS를 불어넣은 후 전기를 가하면 빛이 나는 PDP는 형광등의 원리를 고도의 기술을 적용하여 TV를 만든 기술이었고, 파나소닉을 비롯한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속도로 연구, 개발이 되었다. 그리고 노트북이라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서 액정을 이용한 디스플레이가 점점 그 사이즈를 키워가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었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의 액정이 특정 빛의 편광 상태를 전기적인 신호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는 오랜 전 발견 이후로 일본의 샤프 회사를 통해 처음 손목시계에 적용되었는데, 그 사이즈를 점차 키워가며 노트북이 나올 때쯤 한국과 대만의 회사들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하였다. 

 이러한 큰 두 흐름은 TV라는 제품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결국 PDP는 무릎을 꿇고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시장에 나와서 7~8년 살아남아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기술이 어떻게 사라지게 된 것일까?

 


2. LCD 내 액정 모드


  PDP와의 치열한 전쟁 끝에 LCD는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을 평정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액정 모드 몇 가지가 각 대표 회사들을 필두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통적인 TN이라는 저렴한 액정 모드를 대체하기 위하여 삼성디플레이(SDC)를 중심으로 대만의 AUO, 일본의 샤프, 후지쯔가 VA mode를 이용한 모니터, TV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LG 디스플레이(LGD)를 중심으로 일본의 히타치, NEC 등의 IPS mode를 이용한 진영이 또하나의 한 축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국의 하이디스에서 나온 FFS mode 가 제3 진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전쟁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업체들은 샤프를 제외하고 나머지 회사들이 대만의 AUO, Innolux 등에 기술 이전을 하면서 전쟁에서 사라지게 되었지만 VA와 IPS 모드의 전쟁은 공식적인 디스플레이 전시회에서 서로에 대해 포탄을 날리며 살벌한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두 가지 큰 사건으로 변곡점을 겪게 된다. FFS 모드를 가지고 있던 하이디스가 IMF 때 중국의 BOE에 사람과 기술이 통째로 넘어가는 사건과, 아이폰을 가지고 디스플레에 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판을 뒤집은 애플.

 이 두 가지 사건은 액정 모드 전쟁에 새로운 총성을 울리며 제2막을 열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BOE와 CSOT라는 두 회사를 필두로 FFS와 VA 모드는 성장하였고, 일본의 샤프와 VA 모드의 선두를 두고 싸웠던 SDC는 새로운 회사들의 등장에 당황하였다. 또한 LGD는 FFS라는 IPS의 사촌 지간과 동맹을 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어 팔면서 세를 확장하였다.  큰 전쟁 사이사이에 작은 전투들도 많았다. 같은 VA 모드 진영 내에서도 SDC와 AUO의 SVA 모드와 샤프의 광배향 VA 모드 간의 전투와 LGD의 IPS와 BOE, SDC의 FFS 모드 간의 전투 (SDC는 아이패드 시장을 잡기 위하여 FFS 모드를 PLS라는 이름으로 이원화 정책을 사용하였다. ) 

 과연 지금 시점에서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TN이라는 전통적인 액정 모드는 현재 매우 저렴한 제품으로 그 영향력을 잃어버렸고, 샤프는 광배향으로 양산하다가 회사 전체가 대만의 폭스콘에 팔려버렸다. SDC는 오늘내일하면서 LCD를 접는다고 하고 있고, LGD도 OLED TV를 밀게 되면서 LCD를 접는다고 하고 있다. 남은 것은 BOE를 중심으로 하는 FFS와 CSOT, AUO 등을 중심으로 하는 SVA 가 남게 되었다. 왜 이 두 가지 모드가 시장에서 살아남게 된 것일까?


3. 스마트폰에서 LCD와 OLED 전쟁


 

 LCD와 PDP의 큰 전쟁 이후로 LCD 세상이 잠시 펼쳐졌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LCD 내에서도 여러 전투들이 있었지만 애플의 등장으로 기존 모니터, TV 시장이 아닌 스마트폰이 TV 보다 비싸게 팔리면서 디스플레이의 방향은 스마트폰 시장을 누가 잡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애플의 IPS 액정 모드와 삼성의 OLED 전쟁

 스티브 잡스가 가지고 나온 아이폰은 LGD가 주로 생산했던 IPS LCD 액정모드였다. 선풍적인 인기에 삼성은 뭔가 새로운 대항마가 필요했다. 전략적으로 중소형 LCD를 모두 접어버리고 OLED에 집중한 삼성은 아몰레드라는 브랜드로 아이폰에 대항전을 펼쳤다. LCD의 대표주자로 IPS 모드가 OLED와 싸울 때 다른 액정 모드들도 있었지만 결국 사라졌다. 두 진영의 전쟁은 결국 OLED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아직 국지전으로 LCD가 저렴한 폰으로 나오고 있지만 Edge 디자인과 펀치 홀 디스플레이와 폴더블까지 폼펙터 변형에 자유로운 OLED가 아이폰에 실리면서 10여 년간의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과연 스티브잡스가 선택한 LCD는 왜 OLED에 밀리게 된 것일까?




위 세 가지 디스플레이 역사와 각 기술들 간의 전쟁을 돌아보면서 어떤 기술이 살아남아 오랜 시간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한 때 3D TV라고 안경을 쓰고 보았던 제품이 있었는데, 시장에 나오긴 했지만 곧 사라졌다. 왜 이 기술은 제품까지는 나왔지만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기술자들의 눈높이가 달라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 LGD에서 보여준 롤러블 TV가 적용된 OLED TV는 LCD TV 시장을 점령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오게 될 마이크로 LED 기술은 LCD와 OLED 기술을 넘어서서 과연 한 축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역사라는 소용돌이를 관망할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새로운 사건과 기술들이 등장했을 때 과거의 패턴을 따라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호기로운 마음으로 화두를 던졌지만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으로 기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들을 세 가지 정도로 꼽아보았다. 


 1. 기술의 확장성 (스마트폰, 모니터, TV 그 밖의 제품)
 2. 라이벌 기술과 업체가 있는가?
 3. 아이들과 여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



PDP가 LCD에 패한 이유는 PDP로 모니터,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상도를 높게 만들 수 없었기에 오로지 TV 만을 만드는 기술이었기에 스마트폰, 노트북, 모니터, TV로 파죽지세 커온 LCD를 상대하기에 PDP는 기술의 확장성이 떨어졌다. 


기술은 어느 한 업체만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공장을 짓고,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만드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한 업체에 특화하여 장비 업체가 공급하기 어렵다. 진영이 있어야 한다. LCD의 경우, SDC를 중심으로 하는 VA 모드를 사용하는 진영과 LGD를 중심으로 하는 IPS, FFS 모드를 사용하는 진영이 팽팽하게 어느 정도 세력을 가지고 전쟁을 치루었기에 관련 장비업체와 같이 동반 성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술은 복잡해도 제품으로 사용할 때는 직관적이고 편해야 한다. LG의 조립 스마트폰이 었었다. 분해도 되고, 새로운 모듈을 가져다 붙이면 더 높은 특성을 가지는... 매니아 층은 열광했지만 사용자들은 접촉 불량에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술은 엔지니어가 개발하되, 선택은 소비자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LG의 스마트폰 철수는 소가죽을 스마트폰 뒷면에 넣으면 명품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 프리미엄 폰으로 선택한 임원진들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가지 기술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의 생존을 걸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순간 삐끗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위험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대량 해고까지 몰고 올 수 있는 큰 파도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장이다. 아쉬운 것은 여러 기술들이 실패하고 사장될 때, 기술자들의 열정이 부족했다거나 노력이 부족했다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엔지니어의 땀과 노력이 사라지게 된 것은 비단 기술의 역사가 아닌 인류의 역사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들도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무너져가는 탑에서 기둥 하나를 세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엄청나게 성장하는 조류에 이제 막 올라탄 것인지... 물론 알기 쉽지 않다. 시간을 압축해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그래서 역사를 돌아보면서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기술과 더불어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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