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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Sep 10. 2021

폴드 3...구매하다.

개발 제품을 내돈 주고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발했던 제품을 내 돈 주고 구매했다. 회사 생활하면서 자신이 개발했던 제품을 구매하는 경험은 많지 않았다. 대체로 제품이 내 경제 수준에 비해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큰 맘먹고 구매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떤 시간들이 있었는지...




이번 제품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스타일러스 펜에 의에 디스플레이 손상이다. 신뢰성 평가 테스트는 가혹했고, 매번 펜으로 눌렀을 때 고객 요구 수준보다 한참 아래서 암점이 발생하였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로서 펜을 사용한다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오는데 제품 개발 완료까지 이 문제는 해결이 되고 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고 푸시를 했다.


개발자들은 불량 발생 이후 최초로 하는 것은 현상 파악이다. 그리고 그 현상이 어떤 이유에 의해 정상적이지 않고 이상 발생을 했는지 추론한다. 그리고 몇 가지 가설을 세운다. 주요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주인자라고 하고 그 수준을 여러 개 나누어서 실험한 후 불량 발생률이 차이가 나는지 본다. 만약 차이가 발생한다면 제대로 요인을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여러 부서와 함께 원인을 찾는 반복 작업을 한다. 그러나 인자 실험으로 불량률의 차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요인을 제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체하거나 요인을 변형시켜서 다시 실험해 봐야 한다. 보통 이럴 경우,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여 trade off 관계를 맞닥드리게 된다. 즉 어떤 부분은 좋아지고 어떤 부분은 나빠지게 된다.  정말 좋은 대안이라면 둘 다 좋은 방법으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적화 지점을 찾아서 해결한다. 즉 어느 정도 한쪽이 손해를 보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risk를 감내하고 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도 매우 험난한 과정이다. 빨리 대안을 찾는다면 행운이겠지만 보통은 밤샘 작업을 할 만큼 힘든 과정이다. 이 상황에서는 적군과 아군이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개발은 같이 하는 것이데 해당 영역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온통 시선이 몰리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아래 플로우 차트가 일반적인 개발 프로세스이다. 




그런데 개발 엔지니어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자연계의 물리법칙에 반하는 것인지, 아니면 물리법칙에 순응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인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도전하는 것이라면 아인쉬타인과 같이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천재가 아니라면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것은 이 문제가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실험한 데이터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그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때 필요한 것이 기초과학에 대한 이론적 접근법이다. 응용과학이 수차례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귀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이론적 접근을 통해 문제의 근원부터 시작해가는 연역적 사고가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진 그 순간의 엔지니어에게 필요하다. 학부 수준에서 얻은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각종 인터넷 자료 접근이 손쉬운 오늘날 논문 찾기와 비슷한 연구를 진행한 인적 네트워크 자문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노력의 문제이다.  

 이전에 회사에서 진행했던 TRIZ 과정도 무엇인가 창조적으로 해결안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연계의 40개의 물리법칙을 하나씩 살펴보거나 시간, 공간을 바꿔보는 사고는 나름 문제 해결 방식으로 도움이 되어 진행했었는데, 요즘엔 유행이 지났는지 신입들이 배우지 않는 게 아쉽긴 하다. 


https://en.wikipedia.org/wiki/TRIZ

어쨌든 험난한 시간이 지나갔고, 그 과정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가 제품에 적용되었다.  결과적으로는 특허 6개 정도가 출원될 수 있었다. 특허는 미국 출원이 완료된 것도 있고, 진행되는 것도 있는데 등록까지 되기까지는 2년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에서는 등록된 특허가 제품으로 적용될 경우, 일정 금액의 보상을 주는데 그 금액이 많은지 적은 지는 잘 모르겠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 나온 것처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것이 나에게 소중할 수 있기에 앞으로 상당기간 애장품으로서 폴드 3은 호주머니 속에서 함께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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