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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Aug 27. 2022

작전상 후퇴

외인부대로 만들어져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려던 우리는 상부로부터 후퇴 지시를 받았다.

후퇴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정황을 설명하는 연대장의 목소리는 짜증 섞인 말투로 가득했다.

'이 정도 설명했을면 알아먹어라' 라는 속마음이 자막으로 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전투가 한창인 중에 대대장은 자리를 비우거나 자신의 전투가 아닌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중대장들은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원들 모두 이 부대가 곧 해체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전염병에 의해 쉬는 병사들도 많아지고  소대장들은 가능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역사 속에 무수한 전쟁 중에 후퇴를 하는 전투원들을 이끄는 리더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그리고 그때 분위기는 어땠을까?



전쟁 중에도 협상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정치고 그것이 사람의 일이니...

하나를 내주고, 다른 것을 취하는 전술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보면서도 흔한 역사 속 한 장면이지만 실제 그 현장의 목소리는 소설 속에 담기지 않아 잘 모른다.


 우리가 협상의 대가로 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전쟁 중에 가장 중요한 무기와 탄약을 점검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지휘관은 처음부터 자신이 겪었던 이전 전투 경험담으로 소중한 회의 시간을 채웠다. 점차 말 수가 적어지는 전투원들과 그걸 묵묵히 바라보는 소대장들의 포기하는 듯한 눈빛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더 큰 전쟁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우리 부대는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웠고, 그 것 또한  조직의 속성이고 그동안 많이 겪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 중 소속 변경 통보를 받은 대원들은 허탈해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했다.


 나 또한 한창 큰 전쟁이 마무리돼가는 중에 갑자기 차출되어 이곳으로 이동했지만 그 순간은 당황하고 화가 났었다. 그랬기에 떠날 준비를 하는 대원과 커피 한잔 하면서 인수인계를 도와주거나 옮기려는 부대 정보를 알아봐 주는 것으로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올해 말에 원 소속부대로 복귀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남은 사람들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항상 주머니 한쪽에 넣어두고 다녔고, 젊은 친구들은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인가 하는 자아 정체성의 질문을 입에 달고 다녔다.


 2022년 대한민국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장면은 역사 속에 어느 공간 어느 시간 속에 늘 있어왔던 장면이었고, 그때마다   인간의 번뇌와 갈등은 색깔만 다를 뿐 비슷한 레퍼토리로 흘러갔으리라. 다만 그 공간에 나름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행태는 각양각색이었을 것이다.


 소설 칼의 노래를 읽어보면 무너져가는 조선을 보면서 전쟁 중 한양으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터벅터벅 남해로 내려오는 이순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산에서 대첩을 이끈 장수를 전쟁 중 잡아 올리는 왕. 그리고 가지고 있는 전함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부산항에서 죽어버린 원균까지... 지휘관의 지시 하나로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는 병사 개개인은 그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나름의 역할을 하며 역사의 재료가 되었다.


기록의 힘일까. 그 순간순간을 난중일기로 기록한 이순신은 수백 년이 지나도 현대인들에게 역사의 순환을 알려줄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에 남긴다.


https://youtu.be/BP-uWHYwh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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