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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Jun 30. 2024

기업체 연구원으로 논문 쓰기

2024 IMID 학회 Oral 발표를 위해 논문을 쓰다.

20여 년간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직함은 연구원, 선임 연구원, 책임 연구원, 수석 연구원으로 바뀌다가 최근엔 그냥 "프로"가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 프로가 되었을까?


디스플레이 산업은 100여 년 왕자를 누린 브라운관에서 20~30여 년 전 급격히 평판 디스플레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는 PDP와 LCD가 TV라는 전장에서 전쟁을 치렀고 PDP 진영은 패자가 되어 사라졌다. 그 후 LCD는 잠시 천하를 재패하고 있다가 10여 년 전부터 모바일 전장에서 OLED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승기는 OLED가 잡았고 고급사양의 모바일 시장에서는 OLED가 대부분이고 이제는 IPAD와 같은 태블릿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TV 시장에서도 고급 시장에서 LCD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초대형 TV 시장에서 조용히 Micro LED라는 신흥 세력이 나타나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ymI5Uv5cGU4?si=WlYE3YDNHGZDr08x

나는 이 역사에 한 명의 전사?로 전쟁에 참여 중이다. LCD 왕국으로 들어와 브라운관 세계를 무너뜨리고, PDP 왕국을 무너뜨리면서 15년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LCD라는 기술은 여전히 강한 기술이지만 철기 문화가 히타이트에서 로마로 옮겨가듯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대한민국에서는 LCD 왕국이 망했다. 망국의 전사는 다행히 OLED 신흥 세력에 흡수 통합되었고, LCD 기술 중 OLED 왕국에서 쓸만한 것들을 추려서 전사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OLED 왕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잠시 Micro LED 세계에 파견을 갈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당시엔 몰랐지만 선진 문물을 익혀볼 수 있는 2년여간의 시기에 나름 열심히 또다시 새로운 기술들을 연마했었다. 지금은 다시 OLED 세계로 돌아와서 '프로'로 살고 있지만 파견기간의 추억은 잊혀지기 마련이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논문'이란 비기 형식으로 당시를 회고하며 몇 장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수많은 왕국들이 각자의 첨단 무기를 가지고 살벌하게 전쟁을 치루지만 "만국박람회"라는 형식을 빌어 서로 만나서 교류하기도 하고 각자의 무기를 뽐내는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것을 "학회"라고 명명하고 여기서 새로운 신병들을 눈여겨보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탐색전을 펼치기도 한다.


천편이 넘는 논문을 매년 하나의 학회라는 공간에서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라는 형식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어떤 기술은 비슷한 연구를 하는 그룹들이 여럿 있어 서로 뭘 더 발견했고 해석했는지 '글'로 다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기를 선보이며 그 분야를 개척하기도 하는데 처음엔 미약한 세력이 관심을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분야를 공동 연구를 하게 되는데 이 중 정말 산업에 사용되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면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부와 명예를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전사들 가운데 전사들을 키워내는 대학교 교수들은 전쟁에서 전쟁을 치르다가 교수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기술을 선진국에서 습득하고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 전수해 주는 역할도 한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잠시 나와 학회에서 교류하는 것은 전쟁 지휘관이 보기엔 좀 사치스러운 행위이다. 상대국의 기술을 탐색해 보겠다는 동기로 지원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것이 기업체 연구원들이다. 특히 최선단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는 업체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의 비기가 적에게 새어나가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보안'이라는 최고의 방어 기제 속에 학회 참석에 보수적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발전은 '기록'과 '전승'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돌을 깨뜨리는 인간은 AI를 부리면서 살아가는 시대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인류 전체를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며 이에 대한 대승적 동기에 상당수가 동의하기에 '학회'라는 이름으로 만국 박람회가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출처 : KBS 고려거란 전쟁 (양규)





국제 학회에 영어라는 공통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예전엔 꽤 높은 장벽이었다. 자신들의 업적을 글로 표현해야 했기에 만국 공통어인 영어는 그만큼 비영어권 연구원들에게는 어려운 첫 번째 난관이었다. 그러나 구글번역기가 나타나고 CHATGPT를 스마트폰에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니 이제는 형식이 아닌 비로소 내용이 더 중요해지게 되었고, 다행히 나의 '기록'은 그 내용을 가감 없이 외국인에게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8월 제주도에서 구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아마추어들 노는 곳에 프로가 진입해서 칼을 휘두르는 것이 반칙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좀 칼을 무디게 만들어서 한 번쯤은 휘둘러 보고 싶었다. 그것이 '연구원' 출신 속에 흐르는 DNA가 아닐까? ^^


기대가 된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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