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첨물 Nov 19. 2017

음악세계 콩쿠르에서 5.18이 생각나는 이유는

손기정의 일장기와 전재국

몇 달 전부터 큰 아들이 피아노 연습에 열중이었다. 콩쿠르에 나간다고

3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름 재미를 붙였는지 안 한다는 말 없이 꾸준히 피아노를 치다 보니 학원에서 콩쿠르에 나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건국대학교 새천년 대강당에서 서울지역 초등부 4학년 콩쿠르에 나가서 멋진 연주를 하였다.


카발레프스키의 소나티네...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라 구글링을 해 보니 30년 전에 사망한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였다.


도입부터 화려한 멜로디가 정신없이 시작되는 곡이다.

과연 이 건반의 좌표를 외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아이는 열심히 외우고 박자까지 맞추려고 메트로놈 들으며 연습하였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지하 공연장 로비에는 오전부터 참가한 초등부 저학년 아이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오후에 참가할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혼잡했다.

연주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다들 긴장된 모습으로 악보를 보거나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드디어 입장...

4학년은 401번부터  484번... 우리 아이 입장 순서는 뒷 번호였다.

콩쿠르 구경은 처음이라 LED 전광판에 자신의 번호가 찍히면 자동으로 나와 1분여간 열심히 치고 심사위원의 종이 울리면 갑자기 일어나서 뒤돌아 나가는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연주를 하는 무대가 워낙 크다 보니 다소 떨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가 왠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차례


몇 군데 실수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려운 곡을 무난히 잘 쳤다.

같은 곡을 치는 여자 아이를 보고 '나 보다 잘 치는데?' 하며 멋쩍게 웃었지만

후련한 듯 다 치고 나와서 동생과 추운 바깥에서 공놀이를 했다.


나머지 5, 6학년 연주가 끝나고 시상이 있기까지 또 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와이프로부터 전화가 왔다.

"특상에 1점 모자란 최우수상"

생각보다 높은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아이보다 내가 더 흡족했다.

95%가 여자 아이들이 참가했는데 나름 3년여간의 피아노 학원 생활을 재미있게 보낸 후

첫 '대회' 출전이었는데 좋은 결과까지 나왔다고 생각하니 본인 스스로도 대견하게 생각한 듯했다.




3시간 넘게 공연장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가족 모두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펼쳐본 상패


전재국, 전재국...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음악세계 출판사 대표라... 바로 구글링을 해 보니 전두환의 큰아들이었다.

그는 시공사라는 큰 출판사를 세우고 관련된 관계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최근 문제가 된 "전두환 자서전"도 그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아... 29만원이 전 재산이라는 아비의 아들은 수백억 대 자산가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구나...



그리고 주제는 둘째 아이의 질문으로 이어갔다.

학교 선생님이 낸 숙제인데, 손기정의 일장기를 가린 신문사가 어디인지 알려달라는...

구글링을 통해 '동아일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동아일보... 그때는 그런 기사를 쓰는 민족 신문이었구나


아이들과 오랜만에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주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5.18과 전두환

그리고 그의 아들이 전재국이라고

물론 아비의 죄가 아들의 죄로 대물림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세운 출판사와 인수한 기업들은 '순수'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 진실은 은폐되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JTBC에서 기밀문서가 공개되고

당시 현장에서 학생들을 쏜 지휘관이 양심선언을 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아직 좀비가 나오는 '부산행'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5.18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은 무리일 듯싶었다.

노력한 대가로 얻은 상장과 상패는 훌륭하지만 손기정이 그랬듯이 '전재국'의 이름은 자랑스럽지는 않다고 알려주었다.

자주 가는 목욕탕이 세월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리에 모두들 아쉬워하며 차에 올랐다.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역사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때 역사가 될 것이다.

아이에게 주어진 상패 하나가 무심코 넘길 한 장의 사진 속 추억이 아니라

'역사 속의 한 사람'과 관련된 일임을 어렵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알려준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아들과 겨울 중국 여행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