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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Feb 10. 2016

프로젝트가 끝날 때...

정리되지 않은 채 젊음을 바친 시간들이 떠다닌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잘 다듬어서 키운 후 정말 양산 라인에서 평가까지 가는 경우가 흔치 않다. 대부분 연구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만 본 후 접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능성이 보이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도움이 있을 경우, 프로젝트에 사람이 붙고 몸집이 커진다.


7~8년 전 S 프로젝트를 했을 때가 그랬다.

그러나 기술적인  것보다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리더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프로젝트가 아쉽게 끝나버릴 때 그것을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가 사실 프로젝트를 성공했을 때보다 더 관심이 가고, 그것이 그 기업의 문화를 더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그' 과제가 끝날 때가 그랬다.

A라는 거대한 회사가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AA라는 모기업의 CEO는 A 회사의 프로젝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과제가 '돈이 안된다. 시장이 없다. 가능성이  없다.'라는 단순한? 이유로... 아니 더 복잡한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멤버들에게는 그렇게 전달이 되었다. 그러한 단어로 프로젝트가 없어졌다.

사실 어려운 기술이고, 시장도 무르익지 않았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접히기 반년 전 무르익지 않은 기술을 가지고 양산라인으로 부서가 이전되었다. 통째로

그래... 어렵지만 해보자 하는 분위기도 나름 있었다. 기획팀 상무의 작품이기도 했다.

어쨌든 양산라인으로 내려간 우리들은 무르익지 않은 기술이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슴에 품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많았고, 그만큼 회의 시간도 길었다.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담당 임원은 '눈을 감고' 졸고 있었고, 공허한 메아리가 '수석' 연구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아... 뭔가  잘못되어감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결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접혔다.

5~6년의 긴 시간의 종지부가 찍힐 때, 몇몇 사람들은 아쉬워했고, 몇몇 사람들은  후련해했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모든 샘플들이 순식간에 버려졌고, 3개월간의 지루한 시간 동안 수십 명의 일꾼들은 방치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두 알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가 있었다.

"왜 이 프로젝트가 접혔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목소리마저 묻혔다.


세미나를 하며 기초를 다시 공부하자라고 몇몇은 스스로의 무력감을 이겨내 보려고도 하고

누군가는 주변을 기웃거리며 타 부서로 옮겨가기를 물색하기도 했다.

어느 하나 왜 이 프로젝트는 접혔고,

잘했던 점과 잘못했던 점을 정리하려고 들지 않았다.

아마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으므로

방관자처럼 보이는 것이 서로 멋쩍지 않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도 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담당 임원은 집에 가고, 고참 수석은 별을 달았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상했다.

젊음을 바친 시간들이 공중에 떠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시간들은 내 삶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 마구 섞여있는

책장속의 책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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