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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Nov 10. 2019

일본의 무역 규제 이후 산업 현장의 모습

4.5개월의 허가 절차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3종의 무역 규제가 시작된 지 언 5개월이 지났다. 이후 한국은  WTO에 부당함에 대해 제소했고, 현재 한일은 2차례 실무 미팅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일본 소재 탈피가 쉽지 않다는 기사도 보이고, 일부는 이미 네덜란드나 국산 제품으로 대체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현장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자 한다.


수출 규제 품목 :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용 차세대 PR , 에칭 가스(불화수소)


우리는 규제 대상 중 한 종에 대한 소재 개발을 하고 있었다.  개발은 2년이 넘도록 하고 있었으며,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긴밀하게 수시로 미팅을 하면서 진행을 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고생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7월 아베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규제 대상으로 허가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업체에 긴급하게 확인을 했고, 며칠 후 규제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멘붕'

대체 재료는 아직 평가 결과가 미흡했고, 규제 대상 재료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일본 업체 재료였다. 한일 간의 무역 전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줄이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책임자로서 일단 기존 재료에 대한 구매 PO를 빨리 내놓고, 대체 재료에 대한 평가를 긴급하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였다. 기사가 난 이후 규제 재료는 곧바로 제재 대상으로 분류되어 평소 2주면 입고되는 절차를 거쳤는데, 입고 일자가 불명확하다는 답변만 받게 되었다. 그래. 기다려보자. 얼마나 걸리나...


그리고 또 다른 일본 재료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양산 라인에서는 신규 재료 평가에 대한 설비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일본의 일방적인 통보로 기존 재료를 들여올 수 없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설비를 내주었다. 양산하고 있는 라인에서 개발 재료를 평가하는 것은 '돈'이 되는 제품을 잠깐 멈추고 '돈이 안 되는' 제품을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에 매우 까다롭다. 또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어떤 설비 불량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평가 이후 양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할 경우, 개발자는 불확실함에 대해 최선을 다해 기초 자료를 가지고 설명을 해야 했다.


어렵게 시작한 일본의 또 다른 대체 재료 평가를 진행하면서 기존 재료에 대한 불량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9월 어느 때인가 기존 재료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그 재료를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절박함 속에서 엔지니어들의 숨은 땀이 일본의 퍼스트 소재 기업에 대해 'Bye Bye'를 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한일 간의 엔지니어들끼리는 충분히 과학적인 분석 내용을 통해 문제 원인에 대한 공감을 이루었고, 그들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이상 공급이 어렵다는 이해 속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언제든 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오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또 2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8월에 낸 구매 PO가 수출 허가 절차를 마치고 입고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5개월... 2주면 들어올 수 있는 절차를 4.5개월로 만들어버린 아베 정부의 무능함에 이미 'Bye'를 해 버린 재료의 허가 통보 소식...


"PO 취소해 주세요"


뭐랄까... 시원한 느낌과 허탈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현장에서 엔지니어들은 '일본 제품'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좋으면 당연히 사용한다'는 철저한 실용적인 마인드로 무장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상황에서 '국가와 기술'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굳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21세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한 엔지니어의 삶은 매우 복잡하게 국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소재 국산화도 준비한다. 그것이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국산 소재가 일본 소재 수준까지 따라온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일본의 '갑질'에 진짜 누가 '갑'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생각도 있다.


정말 제대로 한번 해 볼까? Gage R & R에 통계 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측정 데이터를 보자. 측정법 하나하나에 대해 지금까지 했던 것들에 대한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자.


물론 이렇게 될 때까지 비싼 대가를 치렀다.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고, 관련 논문과 현장의 설비를 보고, 토론을 거치면서 '일본'의 소재 기술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우리 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느낌이 온다.


곧 우리 소재로 우리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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