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은 대체 뭘까
몇 년 전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던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업무 역량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데이터 리터러시나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Data driven Design)에 대한 온라인 콘퍼런스나 강의, 책과 아티클도 넘친다.
데이터가 그렇게 중요하다니까, 나도 데이터 역량 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아 일단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이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1도 모르는 상태에서 알아보다 보니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든다.
데이터 공부를 막 시작한 디자이너에게 찾아올 의문
디자이너는 대체 어떤 데이터를 보고 일해야 하는 걸까?
볼 수 있는 데이터도 없는데.. or 봐도 모르겠어.. 이걸 어떻게 디자인에 녹이는데?
데이터 기반으로 디자인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뭐가 다른 걸까?
디자인이라는 게 정량적인 데이터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인가?
SQL 같은 걸 배워야 하는 건가? 무슨 자격증부터 따고 시작해야 하나?
우리 회사는 데이터 분석가도 엔지니어도 없는데.. 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지?
그래서 나름 1년 동안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이라는 걸 하기 위해 고군분투해보고 느낀 점들, 그리고 디자이너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말해보려 한다.
지표 개선을 목적으로, 데이터를 통해 진짜 고객을 보고 디자인하는 것.
누군가 나에게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위와 같이 답할 것 같다.
디자인은 사실 숫자와는 거리가 먼 영역이다. 그래서 언뜻 생각했을 때 데이터 기반으로 디자인한다는 게 뭔지 잘 와닿지 않았다. 사실 위에 정의한 것도 1년 전의 내가 보았으면 그래서 그게 뭔데..라고 되물을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디자인의 목적도 근거도 데이터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디자인의 목적: 예쁘게 만드는 것, 편하게 만드는 것, 눈에 띄게 하는 것
⇒ 신규 유저 전환율을 올리는 것, 과정 중 이탈률을 낮추는 것, 7일 이내 리텐션을 높이는 것
디자인의 근거: 이 위치가 접근성이 좋으니까, 다른 앱에 다 있는 기능이니까, 이렇게 보여야 예쁘니까, 이건 중요한 정보니까
⇒ 지난 UT때 홈에 들어온 유저는 주로 이런 식으로 행동했으니까, 최근 데이터를 봤을 때 00기능은 n일 이상부터 리텐션이 확 떨어지니까, 설문조사에서 이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한다고 했으니까, 프로토타입으로 내부 직원 대상 UT를 해봤을 때 이 요소가 ~라고 느껴진다고 했으니까, 데이터를 봤을 때 이 화면까지 진입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한 유저들이니까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데이터들을 보고, 어떻게 디자인에 적용해야 할까?
의외로, 데이터 1도 모르는 사람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글은 별로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뭘로 검색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의 작은 경험을 공유하자면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린 분석'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용어들 검색해가며 보기
‘그로스 해킹'으로 검색해서 책이나 아티클 보기
데이터 분석 스터디(나의 경우, ‘힙한 데이터들의 비밀'이라는 스터디에 참여했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애널리틱스 툴 공부(나의 경우, 믹스패널)
데이터 분석 관련 컨퍼런스, 강연 등 보면서 프로세스 감 잡기
개인적으로 컨퍼런스 등은 대략적인 데이터 기반 프로덕트 개선 프로세스를 감을 잡기엔 좋았지만,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알아야 하는지는 막막했다. 그래서 린 분석이나 그로스 해킹 등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용어들은 검색해보고, 그 용어 관련 글 읽으면서 거기서 모르는 것도 검색해보고.. 이런 식으로 익혀 나가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을 보면 내가 일하는 서비스에 적용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공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활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많고, 아직도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회사에서 GA나 믹스패널, 앰플리튜드와 같은 애널리틱스 툴을 사용하고 있다면, 정량적 데이터를 참고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세웠던 가설을 검증하며 이 기획과 디자인에 유저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파악한다. 퍼널 별로 뜯어보며 유저들이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보통 엄청 많다..) 가능하다면 유저 그룹을 나누어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한다.
또, 기존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당시 어떤 개선들이 있었고 그때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프로덕트 변화 외에도 영향을 준 요인이 있지는 않은지 등을 볼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을 보다 보면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 목표 지표를 설정하고 가설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유저들이 어떨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 화면에서 유저들이 더 많이 눌러보는 영역이 어디일까? 뭔가를 찾을 때 검색을 누를까, 아니면 카테고리로 들어갈까? 이런 것들은 정량적 데이터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A/B 테스트가 가능한 환경이라면, 자주 활용해 본다. 단, 모수와 신뢰도, 기간에 주의해야 한다. 신뢰도의 경우 p-value를 이해하려고 온갖 외계어 같은 수식들이 설명된 글들을 애써 들여다봤는데, 수학적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개념만 어느 정도 알면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사이트를 사용해도 충분했다. A/B 테스트를 해보면 뇌피셜, 추측이 아닌 실제 결과를 볼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디자인은 사실 정성적 영역일 때가 많으므로(비주얼 디자인이라면 더더욱) 정성적 데이터가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하우스에서 일한다면, 유저 즉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되도록 많이 열어두고 꾸준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객을 직접 만나는 것은 항상 가장 파워풀한 인사이트를 안겨 준다. 실제 고객이 아니더라도,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프로토타입을 보여주며 캐주얼하게 하는 UT여도 꽤 도움이 된다. (물론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할 때는 바이어스는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설문조사는 정량적 데이터도 얻을 수 있지만, 나의 경우 주관식 답변들을 읽다 보면 고객들이 머릿속에 더 그려지곤 했다. 구글 폼을 통해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설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는 큼직한 업데이트 시엔 건의를 받는 창구도 열어두려고 한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무형의 서비스를 다루는 플랫폼이라, 서비스에 대한 리뷰를 볼 수 있었다. 매일 꾸준히 리뷰를 살피다 보면 계속 나오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들이 있다. 모바일 앱이라면 스토어 리뷰를 보는 것도 좋다.
VOC 역시 마찬가지로, 온갖 불편사항들이 모이는 고객센터를 참고하면 고객들의 페인 포인트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모든 raw 데이터를 보는 것보다는 cx매니저와 같은 담당자에게 틈틈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았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차곡차곡 쌓인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는 내 디자인의 근거가 되어 준다. 더 논리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 직군을 설득할 때도 유용하다. 우리 고객들은 주로 이렇게 행동하고, 이런 성향을 갖고 있고, 이런 걸 원한다는 데이터가 명확하다면 당연히 설득력도 올라간다.
정성, 정량적인 데이터를 다방면으로 보다 보면 고객의 페르소나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실제로 디자인을 할 때, 고객에게 공감하여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기가 한층 쉬워진다.
사실, 나도 여전히 ‘나는 보통 이런 걸 이렇게 쓰니까' 하며 고객이 아닌 나의 관점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 고객이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있을수록 내 주관적인 기준보다 고객의 기준으로 보기 쉬워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의 최종 목적은 결국 지표를 개선하는 것이다. 기능 구현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표를 바라보고 출발하면 지표를 올리려면 어떤 지표들을 올려야 할까? 이 지표들을 올리려면 어떤 기획과 디자인을 해야 할까? 로 연결된다. 이렇게 한 디자인은 더 목적 중심적이다.
또, 데이터가 들어간 가설을 세우고 디자인을 시작하면 우선순위가 보인다. 우리는 항상 한정된 리소스로 최대한의 임팩트를 끌어내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기능을 넣고 어떤 건 안 넣어야 할까? 어떤 부분의 UX를 더 고민해야 할까? 이 UI를 고치는 것이 과연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과 부합할까? 이런 것들을 결정할 때 가설을 세워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PO나 PM이 세울 프로젝트 전체의 가설도 있겠지만, 디자이너도 작은 단위로도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00기능의 이용 기록을 모아서 달력에 표시해준다면, 성취감을 주고 달력을 채우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여 리텐션이 올라갈 것이다. “ 이때 만약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가 00기능의 리텐션이 아니라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라면 이런 아이템은 재고해보아야 한다.
별생각 없이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했던 아이디어들이 ~한다면 ~할 것이다. 형태로 가설을 세우다 보면, ‘~할 것이다’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그럼 그 아이디어는 사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1년 동안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노력하며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사실 아직도 모르는 것, 어려운 것도 많고, 데이터 기반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여전히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디자인의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대대적인 개선이 아닌 한, 미묘하고 디테일한 사용성 개선이나 좀 더 깔끔하고 예쁜 화면 디자인 같은 것들은 지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직 충분히 시도해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이런 데이터들을 보게 되면 디자인의 영향력을 의심하게 된다. 디자인을 할 때 디테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디까지가 진짜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디자인일지 계속 고민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