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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 언니 May 29. 2018

회사, 사람

퇴사를 해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땡땡 씨, 저 도착했어요. 식당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네~ 저도 이제 막 버스 내렸어요. 10분 안으로 도착할 것 같아요."


 퇴사한 지 거의 2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익숙해져 우리는 직접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올라온 여행 사진 한 장에 들떠 나는 바로 약속을 잡았다. 메신저로도, 전화로도 할 수 없는 여행 이야기니까! 프로필 사진 속의 그녀는 터키 하늘을 날고 있었다. 터키에서 패러글라이딩하기!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에 그녀를 직접 만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녀는 회사를 다니며 짬짬이 여행을 즐겼다. 여행은 그녀의 숨구멍이었다. 그녀의 업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항공사 마일리지도 차곡차곡 쌓였다. 작년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무려 7번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녀는 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유독 그녀에게 많은 일이 몰렸다. 성실함과 책임감을 이용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녀는 야근과 철야를 반복했다. 바쁠 때는 새벽 4시에 퇴근해 잠깐 눈을 붙이고 9시 정시 출근을 하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많이 피곤할 법도 한데 그녀는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퇴근 후 같이 맥주타임을 갖기도 했다. 밥벌이의 고단함, 연애, 가족, 여행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거리감은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선이 존재했다. 동료이지만 친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이건 여행을 좋아하는 땡땡 씨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1. 친구는 주말에 약속을 잡지만, 동료는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는다.

 동료는 직장에서 만난 사람이다. 관계의 시작점이 회사와 일이기에 주말만큼은 회사와 엮여 있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밥벌이에 지친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란 걸 알기에 동료들끼리는 주말에 애써 약속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말이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들이 생기면 요일과 관계없이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사람을 회사 밖에서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2. 동료는 친구에 비해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좁다.

 동료와도 업무외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소재는 한정적이다.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나의 사생활이 뜻하지 않게 전체 공유가 되거나 업무와 엮여 불편함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오픈이 돼도 그만인 이야기들을 한다. '나'를 이야기 하기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음식, 여행, 연애, 옷, 화장품, 책, 영화 등 서로의 취향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런 취향을 즐기는 A 씨는 회사 밖에서 이런 모습을 갖고 있겠구나 하며 추측할 뿐이다.


3. 회사가 아니었다면 친해질 수 없었던 사람

 참 많이 다르다. 전공, 관심사, 취향, 자라온 배경 등 뭐 하나 같은 걸 찾기 힘들다. 회사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 함께 일을 하며 나와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춰가고 같이 뭔가를 이뤄내는 과정들이 간혹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적인 공간에서 만났다면 지금 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과 사람'을 통해 친해진 관계이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는 더없이 단단한 관계지만, 회사 밖에서는 일 외의 것이 있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동료였지만 친구로 만났으면 더 좋겠다 싶은 사람들은 퇴사를 하고 나서야 친구가 되었다. 동료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적당한 거리감과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 동료였을 때 가졌던 그 거리와 긴장이 친구가 되어서도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만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간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만들어지는 관계가 어색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회사 안에서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다 하더라도, 내가 떠난다 하더라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동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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