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대만의 '당연함'과 '당연함'이 만나 겨루는 해프닝
'전원책'이 검색어에 올랐다.
뭔 일인가 싶어 봤더니 솔립이란 아이와 함께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만나 서로의 위시리스트를 같이 하며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친구가 되기엔 나이만큼이나 생각도 너무 큰 차이가 난다.
내가 주목한 짝꿍은 '전원책- 이솔립'이다.
이 짝꿍의 공통점은 자기주장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창과 창이 아니랄까 봐- 이들은 1회부터 예사롭지 않다.
솔립이의 꿈은 아이돌!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다. 부모님이 인정하든 말든 내가 좋으면 그만! 마이웨이를 외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이다. 전원책은 솔립이의 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우뚱거린다. 심지어 잘못됐단다. (꿈에 옳고 그른 게 어디 있나요???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대통령, 의사, 판사, 검사 등 명예와 권력을 쥘 수 있는 꿈이 더 좋지 않냐고 말한다. 두 사람의 욕망은 확연히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다. 아이돌의 화려함과 인기가 아이들에게는 곧 권력이고 명예다. 시대의 욕망이 바뀌면서 모습만 다르게 변한 것뿐이다. 다만 욕망을 대하는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솔립이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인정하든 말든 본인이 좋고 하고 싶으면 그걸로 된 거다. 자신의 만족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만약 전원책 변호사가 솔립이와 같은 2000년대생이라면 솔립이 못지않은 말발로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책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전원책 변호사는 책이 '지식의 보고' (이 말도 참 오랜만이다. 전원책 세대에게는 이런 단어가 너무 아무렇지 않겠지만!)라며 꼭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말한다. 솔립이는 유튜브로도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며 한 방을 날리지만 전원책에게는 여전히 유튜브 따위가 책을 대신할 순 없다. 어쨌든 책을 봐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는데...
그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그에게 책은 지금의 구글과 같았을 것이다. 인터넷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한 비유가 될 수 있을까. 정보나 지식 싸움에서 책을 대체할 무언가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지식의 양으로 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새로움과 재미의 경쟁이다. 유튜브가 지식을 대체하고 구글로 모든 걸 검색할 수 있으니 책을 볼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전원책 변호사의 말대로 독서는 정말 중요하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다'의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말과 글로 소통한다. 활자로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기술을 익히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독서를 말하기에 비유한다면 '듣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는 상상력이다. 작가가 보는 풍경, 상황, 인물, 사건 등 활자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마다 생각하는 주인공의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고 같은 묘사라도 조금씩 다른 풍경을 그린다. 상상하고 몰입하는 재미는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기서, 잠깐 전원책 변호사의 말을 짚고 넘어가자면 무작정 읽는다고 머리에 남지는 않는다. 생각을 되새김질하고, 기록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책은 기억에 남는다. 리뷰를 남긴 책과 남기지 않은 책, 누군가와 오래도록 이야기한 책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솔립이와 전원책 변호사의 대화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각자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전원책 변호사는 아이돌이 되겠다는 솔립이의 꿈을 이해할 수 없고, 솔립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전원책 변호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각자의 생각을 이해해나갈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이해를 하려면 듣기가 먼저일 텐데 전원책 변호사가 제발 솔립이 말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다르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닐까. 2회에서는 듣는 대화를 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