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_넘지 말아야 할 한계도 있다.

<위플래쉬>의 주인공 앤드류는 한계를 넘어 최고의 드러머가 된 걸까?

by 수박 언니

드라이기를 켰다. 오늘도 왱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드라이기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 건 드럼 소리였다. 음악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스토리, 캐릭터, 메시지의 힘이 큰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이 메인이 되어 감동을 이끄는 영화에는 큰 감명을 받지 못한다. <위플래쉬>는 표면적으로 보면 음악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음악의 감동이 보다 예술의 딜레마를 표현한 것 같았다.


우리의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드럼 연주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야망 있는 대학생이다. 앤드류는 플래처 교수의 눈에 들어 그가 이끄는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의 보조 드러머로 선발된다. 음악으로 최고라 손꼽히는 대학에서 최고의 실력파 교수의 눈에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플래처 교수의 인정을 받으면 베스트!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될 수 있다. 앤드류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보겠다는 욕심과 인정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안고 연습실에 들어간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일들이 그의 눈 앞에 펼쳐진다.


3.jpg
1.jpg

플래처는 앤드류에게 불꽃 싸다구를 날리며 박자를 맞추라고 소리를 지른다. 음악적인 크리틱만 하면 다행인데 앤드류의 개인사를 끌어와 폭언을 퍼붓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앤드류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자 의자가 날아온다. 아, 드럼 배우기 정말 힘들다. 박자도 맞춰야지, 멘탈도 키워야지, 그 와중에 반사신경을 발휘해 날아오는 의자도 피해야지.

6.jpg
5.jpg

앤드류는 그렇게 정신 나간 첫 합주를 끝내고 연습에 몰입한다. 앤드류가 자신을 잃어간 건 이때부터인 것 같다. 오케스트라에 적응하기 위해 스틱을 쥔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손가락에 붙인 밴드가 피로 흥건해질 때까지 연습을 한다. 열정이자 열심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소 가학적이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14.jpg
15.jpg
18.jpg
19.jpg

메인 드러머 교체냐 유지냐를 놓고 플래처 교수와 옥신각신하던 앤드류는 공연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 가야 하지만 그는 미친 사람처럼 피범벅을 하고 공연장으로 달려간다. 메인 드러머의 자리를 지키겠다며 오기로 스틱을 잡지만 팔이 떨려 연주 도중 스틱을 놓치고 만다. 결과는 예상 그대로. 앤드류는 그 날 이후 무대에 서지 못한다. 연주를 망쳐 오케스트라를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보다 드럼 연주자로서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좌절감이 더 컸다. 그렇게 앤드류는 학교를 나와 방황하던 중 재즈바에서 우연히 플래처 교수를 만난다. 플래처 교수는 학교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교육방식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는 움찔했다. 그 또한 플래처 교수가 학교를 나오는데 큰 힘을 보탰기 때문에. 플래처 교수는 왜 그렇게 밖에 가르칠 수 없었는지 담담히 말한다.

20.jpg
21.jpg
22.jpg
23.jpg

찰리 파커에게 심벌즈를 던져주는 '조 존슨'이고 싶었던 플래처. 플래처는 제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기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 칭찬과 격려만으로는 찰리 파커를 키워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에 대한 주장이자 변명이었다.

앤드류는 그제야 미친놈처럼 자신을 괴롭히던 플래처 교수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의 거친 방식에 타격이 심했던 앤드류는 플래처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다 제2의 찰리 파커가 좌절하면 어쩌냐고. 플래처 교수의 대답은 단호하고 명쾌했다. 제2의 찰리 파커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앤드류의 가슴에 다시 불이 붙고, 플래처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임시로 맡게 된 오케스트라의 드러머로 들어와 달라고 한다. 앤드류는 들뜬 마음으로 무대에 선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앤드류는 또 한 번 플래처의 사악함에 놀란다. 단원들의 실력이 개똥이라 지휘가 힘들다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앤드류와 합주를 할 오케스트라는 뉴욕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여 있었다. 뭐 이 정도라면 플래처의 거짓말이 귀엽기만 하다. 문제는 악보였다. 앤드류가 죽어라 연습한 '위플래쉬'로 연주를 한다고 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악보가 놓여 있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앤드류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싸늘한 시선을 피해 무대를 나간다. 아들의 연주를 지켜보던 아버지는 또다시 좌절한 앤드류를 보고 마음 아파하며 그를 안아주는데,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27.jpg
28.jpg


앤드류가 다시 무대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피 튀기게 연습한 '카라반'을 연주한다. 플래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순간 당황하지만 그의 호흡에 맞춰 합주를 시작한다. 독기를 잔뜩 품은 앤드류는 플래처에게 쌍욕을 날리며 연주를 이어 가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멋진 합주가 나온다. 늘 매서운 눈으로 앤드류를 쏘아보던 플래처의 입가에 아빠 미소가 걸리고 연주는 막바지에 다다른다. 함박웃음을 지은 플래처가 곡이 끝났다는 사인을 보내는데, 앤드류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미소가 넘치던 플래처의 얼굴에 다시 당혹스러움이 자리 잡았다. 앤드류는 마치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듯 무언가에 홀린 듯 드럼을 치기 시작한다.

29.jpg
30.jpg
31.jpg
32.jpg
33.jpg

플래처는 그런 앤드류를 보며 연주자로서 한계를 깨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앤드류가 거칠게 치고 나오자 플래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앤드류는 그제야 플래처를 본다. 플래처는 거칠게 몰아붙이는 앤드류의 템포를 조심스레 낮춘다. 숨을 고른 앤드류는 다시 플레처를 바라보고, 플래처는 지금이라며 앤드류를 밀어붙인다. 플래처는 마지막으로 남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플래처는 열정이 재능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재능은 한계가 있지만, 열정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열정이 재능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한 학생을 통해 경험했다. 모든 교수가 연주자로 재능이 없다는 사망 선고를 내린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플래처는 구제불능인 그 학생의 열정을 봤다. 그리고 열정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오케스트라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그 결과 구제불능이었던 학생은 링컨센터에서 3등으로 졸업하고, 일 년 후엔 1등을 한다.


한계를 넘어선 놀라움도 잠시. 그 학생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고 만다. 자살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자살한 학생의 어머니는 플래처 교수를 지목했다. 짐작이 갔다. 플래처는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겠다며 세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음악가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학생 또한 한계를 넘어서는 자신을 보며 기뻤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했을 것이다. 한 번 넘은 한계는 더 이상 한계가 아니기에,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한계에 도전했을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며 느끼는 황홀함에 취해 또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플래처가 몰아붙인 것보다 더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인 걸 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계를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일 아닌가.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넘어서서 성장을 이루는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있는 것 같다. 예상과는 달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블랙 스완>의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흑조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지만 무대가 끝나자 그녀의 삶도 끝나고 만다.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망가트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위험한 한계가 아닐까. 어떤 한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기 때문에 한계로 둬야 하는 것 같다.


앤드류는 어떻게 됐을까. 최고의 드럼 연주자로 제2의 찰리 파커가 됐을지, 평범한 남자로 살아가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어떤 삶을 살고 있던 간에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음악이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하는 수단이었으면 한다. 음악에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길. 음악 위에 앤드류가 있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라디오를 켜면 마감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