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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 언니 Jan 28. 2019

나답게 '살기'가 얼마나 불편한데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려면 생각보다 불편할걸?

버스에 붙은 직방 광고를 봤다.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자'는 말은 좋았지만 말만 좋은 거 아닌가 싶었다.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건물 뒤편엔 족발집이 있었고 맞은편 건물엔 맥주집이 있었다. 수시로 고기 삶는 냄새가 올라왔고, 술에 흥건하게 취한 이들을 지나쳐야 했다. 덤으로 바닥에 잔뜩 뿌려진 술집 전단과 명함도 밟고 다녀야 했다. 그때마다 한 생각이 있다.


집은 '어디에'가 중요하구나.


우여곡절 끝에 집다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신축 오피스텔이었고 첫 입주자라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냉장고, 드럼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살림살이 대다수가 빌트인이라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월세와 관리비를 포함하면 이전에 살던 집보다 10~15만 원 정도 더 비쌌다. 1년으로 치면 120만 원~ 180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셈으로는 마이너스였지만 마음은 플러스였다.


더 이상 비릿한 고기 냄새를 맡을 일도, 취한 사람들을 피해 다닐 일도 없었다. 아침마다 토사물과 술집 전단지가 뒤엉킨 길거리를 걸어 다닐 일도 없었다. 주거 단지 안에 위치한 새 집은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아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아버지, 공원에서 캐치볼을 하는 아빠와 아들의 풍경이 있었다.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행복해졌다. 돈을 준다고 볼 수 있는 풍경도, 억지로 만들 수 있는 모습도 아니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답게 살기'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당해야 했다.


그나마(?) 돈이면 다행이다. 돈보다 힘든 건 편견이었다. 예술대 학생들이 졸업을 한다고 예술가로 활동하는 건 아니다. 돈으로 환산되는 재능을 가졌든 아니든 일단 제 밥벌이를 해야 한다. 분야는 달랐지만, 다들 약간의 재능을 끌어 쓸 수 있는 업종을 선택했다. 나도 그랬다. 어디서 어떻게 일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학교에서 진행한 취업 박람회에 갔다.


부스를 돌며 여러 회사들을 살펴봤다. 대기업도 있었고, 중소기업도 있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사업부서가 많고, 부서별로 업무도 잘게 잘 나눠져 있어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 궁금해 부스에 들어갔다. 담당자는 채용 과정을 설명하다 대뜸 전공을 물었다. 전공을 듣고 멈칫하더니 금세 심드렁한 말투로 대충 설명을 이어갔다. 귀찮다는 표정이 너무 눈에 거슬려 나도 대충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돌아서서 몇 걸음 걸었을까. '글이나 쓰지'라는 빈정거림이 귀에 들어왔다. 뒤돌아서서 지금 나한테 한 말이 맞냐고 확인을 할까, 그냥 갈까 고민이 됐다. 할 말은 많았지만 뒤돌아 서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예술대 졸업장은 취업에 쓸모없다는 편견을 반박하는 일이었다. 전공을 우대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때는 뻔한 다음이 싫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기 싫었다.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 등 글 쓰는 전공이라서 하는 일들을 벗어나고 싶었다. 글 쓰는 사람들 안에 갇히기 싫어 글쓰기에서 약간 벗어난 일들에 관심을 가졌다. 기획, 홍보, 마케팅, 광고, 방송 등 전공 밖 세상은 재밌는 게 많았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이런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전공 밖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출판사로 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리 뻔한 일을 하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기획, 홍보, 마케팅, 편집을 다 경험해보고 출판쪽을 나왔다. 편견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편견에 갇혀 일을 하진 않았다. 


나답게 살아도 그렇지 않아도 '살아가는 고단함은 고정값' 


'나도 적당히 남들 사는 대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교사나 공무원이 되는 삶. 교사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선생님 하면 어때?" 힘들단다. 마냥 편하지 않단다. 학생들 sns까지 신경 써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란다. 그렇다. 결국 월급쟁이 다 비슷비슷한 것 아니겠는가! 밥벌이뿐이겠는가. 결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고단한 구석이 있겠지. (아빠는 가끔 나에게 비혼을 추천하기도 한다. 요즘은 다시 결혼을 추천하고 있지만;;;) 고정값이 같다면 나답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이 불편해질 때도 있지만, 내 마음이 즐겁고 편한 게 먼저니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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