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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 언니 Feb 04. 2019

섣부른 판단과 편견이 부른 2차 가해

교회 내에서 성추행 피해자에게 조직적으로 가해졌던 2차 가해가 떠올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1심을 뒤엎은 결과라 다들 말이 많다. 불륜이다 vs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다라는 상반된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3심이 남은 상황이라 정확하게 사건의 진위를 논하긴 힘들지만, 만약 성폭력 사건이라면 지금 이 불륜 논란은 명백한 2차 가해다.


  




내가 다니던 대형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신도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 이 사건은 성추행이 아닌 꽃뱀 사건으로 다뤄졌다. 담임 목사를 스토킹 하던 몇몇 여신도가 담임 목사에게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고, 담임 목사는 이런 접촉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으로 오해받는 일이 생겼다고 사건을 왜곡했다. 


부교역자들은 성추행 사건을 꽃뱀 사건으로 팀 리더들에게 전달했고, 간사와 팀 리더들도 팀원들에게 같은 말을 전달했다. 사건의 진위를 알 수 없는 대다수의 팀원들은 리더의 말을 듣고 피해자를 꽃뱀으로 간주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누군가 이 사건을 물어보면 '아 그거 꽃뱀이 그런 거래'라고 별생각 없이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건의 본질이 드러났다. 꽃뱀 사건이 아니었다. 성추행 사건이었다. 담임 목사에 대한 실망보다 교회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2차 가해가 더 충격이었다. 부교역자 중에서 아무도 양심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정말 큰 실망이었다. 교회도 조직이고, 권력이 작용하는 공간이라 진실을 말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건 짐작이 간다. 


그러나 목회자는 '적당히 회사 눈치 보며 밥벌이하는 직장인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교회의 눈치가 아닌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대형 교회 부목사라는 타이틀이 목회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일 보다 더 큰 그들을 보고 한동안 예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런 의심 없이 리더의 말을 그대로 믿고 다른 사람에게 전한 것도 마음이 쓰였다. 진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피해자에게 간접적으로 2차 가해를 한 꼴이었다. 


교회는 그 사건을 겪고 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담임 목사가 바뀌었고, 교회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다. 치유공의TF팀이 생겼고 이전 담임 목사와 진행 중인 법적 소송의 진행 상황과 결과를 성도들에게 공개했다. 2017년 6월, 고등법원에서 가해자의 성희롱, 성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것으로 이와 관련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김지은 비서의 미투가 터진 다음 날, 환갑을 바라보는 팀장 하나가 출근하자마자 아주 재미난 뉴스를 봤다며 들뜬 얼굴로 아침 인사를 했다. 서로 좋아 붙어먹다 수틀려서 미투 한 거라며 세상에서 제일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자기 딸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저렇게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을까.


작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 대한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공감, 지지, 응원으로 그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했고 비난, 가십, 루머로 대답하기도 했다. 어떤 목소리를 내든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다. 하지만 적어도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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