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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 언니 Feb 06. 2019

명절에 화투를 쳐야 하는 이유

기껏 모였지만 따로 놀고 있었다. 이게 뭐람.

가족들과 떨어져 산 지 10년이 넘었다. 어쩌다 보니 본가에 내려가는 횟수는 일 년에 고작 3~4회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 설 연휴도 그 3~4회 차 중 1회 차였다. 첫째 날은 먹이고 먹느라 바쁘다. 엄마는 쉼 없이 뭔가를 내왔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과일을 내왔고, 과일을 먹고 나면 차를 내왔다. 차를 마시기 직전엔 아빠도 등장했다. 아빠는 하얗게 분이 난 곶감을 들이밀며 직접 말린 거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말랑하고 촉촉한 곶감의 식감도 당도도 모두 훌륭했다. 아빠가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첫째 날은 made in 엄마/아빠표 음식으로 끝났다.


둘째 날은 외출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근황과 덕담, 안부를 전했다. 셋째 날, 드디어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다 따로 놀고 있었다. 아빠, 엄마는 TV와 남동생은 컴퓨터와 나는 넷플릭스와. 이럴 수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모처럼 다 같이 모였는데 왜 이렇게 따로 노는가 싶어 아빠 엄마가 있는 안방에 들어갔다.


이럴 수가! 안방에서도 놀랄만한 풍경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한 방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TV를 보고, 아빠는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유트브로 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리기도, 뉴스를 보고 엄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TV를 보느라 정신없는 엄마는 노래하는 아빠에게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아빠의 뉴스 보고에 맥락 없는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따로 놀기에 익숙했다. 아빠는 심지어 내가 말을 걸어도 얼굴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빠, 내가 일 년에 몇 번 온다고. 얼굴은 보고 대답을 해."

아빠는 피식 웃으며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빠와 나를 지켜보던 엄마도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따로 놀았지'하는 마음에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이. 꼭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명절이니까, 가족들이 다 같이 모였으니까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해, 특별한 뭔가를 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나밖에 없었다.


"화투 칠 줄 아냐?"



그날 밤, 아빠가 멀뚱히 TV를 보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필이면 왜 화투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윷놀이라도 할래?"

윷놀이라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깔깔거리며 웃는 나를 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화투 쳐서 용돈 좀 털어 갈랬더니, 화투도 못 치고. 윷놀이라도 해야지. 내일 윷짝 사러 가자."


다음 날, 우리 가족은 윷놀이 대신 아빠가 만든 손칼국수로 한 자리에 모였다. 놀이든 음식이든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한 자리에 모였지만 손칼국수를 먹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고명을 얹지 않았다. 아빠는 신 김치, 엄마는 깍두기를 곁들여 먹었다. 나와 동생은 고명을 얹었다. 나는 김가루만, 동생은 계란지단과 김가루 둘 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맛있게 아빠가 만든 손칼국수를 먹었다.


"가족들이랑 뭐했어?"

이 질문을 받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뭐 별 거 있겠냐며, 그냥 먹고 자고 그랬지'라고 대답했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다. 우리 가족이 따로 놀기에 익숙해졌다는 건, 이제 더 이상 함께 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주 가끔, 365일 중 며칠 정도 모이는 그때에는 같이 놀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추석에는 화투를 배워 가야겠다. 화투로 설거지 내기도 하고, 용돈 내기도 하고, 저녁  내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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