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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 언니 Apr 14. 2019

구남친 같은 회사

취향만 아니었으면 3인칭으로 지냈을 텐데...

#1.  

망설이다 신청을 하고 말았다. 북클럽이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라인업이 너무 좋았다.

문유석 판사님, 김애란 작가님, 내년엔 심지어 김연수 작가님 강연이 잡혀 있었다. 

뼈 때리는 취향저격이었다. 지난 회사와는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는 나름의 지조를 가뿐하게 접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북클럽을 신청했다.


#2.

이 회사는 정말 구남친 같은 회사다.

취향이 비슷해 헤어진 뒤에도 자꾸 생각이나 골머리가 아픈 그런 구남친.

퇴사하고도 이 회사에서 만든 책을 참 부지런히 사서 읽었다.

책 뒤편에 새겨진 이들의 이름을 보며

'$$씨가 고생했겠다.'

'**씨가 이제 이 팀에서 일하는구나' 하며

그들의 근황을 가늠했다.

그러다 잠시 그곳에서 일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퇴사한 지금도 그곳에 대한 감정을 한 단어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뿌듯함, 든든함, 자부심, 성취감, 좌절감, 억울함, 답답함 등

온갖 감정이 촘촘하게 베어 있다. 

시간과 마음을 쏟았던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좋다, 싫다로 끝나지 않듯  

이 회사도 그런 것 같다.


#3.

어쨌든 나는 또 취향에 이끌려 조만간 머쓱하게 구남친 같은 회사와 재회를 한다.

독자로서의 재회라 더 낯설고 어색한 걸지도.

수많은 강연을 기획했지만, 내가 제대로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머쓱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부지런히 강연을 다녀봐야겠다.

어떤 말들이 나를 더 깊고 넓게 만들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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