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
2016년 12월에 개봉했다. 나 말고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굳이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라라랜드>를 충분히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12월의 나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다. 'Another Day of Sun'을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몸짓들, 조화로운 색깔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영화가 끝나 왕십리 CGV를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탭댄스를 추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보기 싫었고, 세바스찬이 연주하는 재즈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미아가 보기 싫었다. 그렇게 '치킨 꼬치'로 해야 된다고 우기더니, 미아와 헤어진 후 가게 이름을 굳이(!) 'SEB'S'로 지은 세바스찬도 싫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8년 5월, 3번째로 <라라랜드>를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돌아가서 <라라랜드> 글을 쓰자. 그리고 계속 기억하자. 미아와 세바스찬, 연기와 재즈를.
예술이 힘든 걸 알면서도, 세상에는 음악과 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도 라라랜드를 보고 와서는 세바스찬처럼 바bar를 차리고 싶다 했다. 자신의 오랜 꿈이라 했다. 그래, 그럼 내 꿈은 무엇일까.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을 때 써먹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돈이 많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가 무얼 하든 상관 안 하거나, 응원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학원에 가는 것, 하와이에 가는 것,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라라랜드>가 이렇게 감동적이지 않았겠지. 우리 모두 마음에 접은, 접고 있는, 접어야 할 꿈 하나쯤은 있을 테니. <라라랜드>는 그 꿈을 접지 못한 바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던 것은, 누군가의 허락과 선택을 기다리는 미아의 모습이었다. '10대 막장 드라마'같지만, 그러니까 미아 입장에서 예술성이 좀 떨어지는 드라마라 하더라도, 옷을 맞춰 입고 성실히 연기한다. 흰 와이셔츠, 빨간 가죽재킷, 경찰 제복…. 눈물 연기를 하는 도중 누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도, 심사위원이 관심 없다는 듯 문자를 치더라도, 어쨌든 미아는 계속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미아가 이모와 함께 꿈꿨던 '연기'는 무엇일까? 그녀의 마음속에 처음 꽂힌 '영화'는 무엇일까? 미아에게 오디션 합격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세바스찬이 다른 도시로 투어를 떠나기 전에 미아와 세바스찬은 크게 다툰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사람들을 신경 썼어?"라고 다그치는 미아의 대사는, 자신이 잊었던 것을 상기시켜주는 그의 열정이 변질되는 중일까 봐 두려웠던 그녀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항상 순수한 재즈를 사랑했던 너마저, 그렇게 타협해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미아는 세바스찬을 만나 스스로 대본을 쓰고, 1인극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 연극은 미아에게 처참한 흥행 실패를 남겨주고, 아름답고 뜨거웠던 세바스찬과의 연애를 끝내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동안 받은 수많은 상처로 인해 연기를 그만두고자 했던 미아는 별 다른 준비 없이 편한 하늘색 니트를 걸친 오디션에서, 이모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그리고 합격한다. 신인 여배우를 데리고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준비하는 심사위원에게, 망해가는 재즈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세바스찬에게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해 고향에서 오디션장까지 달려온 스스로에게 심심한 위로의 노래를 바치며, 합격한다.
And that's why they need us,
So bring on the rebels
the ripples from pebbles
The painters, and poets, and plays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Crazy,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break
Here's to the mess we make
<라라랜드> OST, Audition 中
미아는 파리에 가서 재즈를 들을 때마다 세바스찬을 떠올렸을 것이다. 성공한 여배우가 되기까지 열심히 노력했을 테니, 어쩔 때는 재즈가 들려도 별생각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영화가 개봉하면 몇 번씩 관람을 했을지도 모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마다 기립 박수를 쳤을지도. fuck them을 외치던 남자니까, 누가 욕하든 말든 열심히 박수를 쳤을 것이다. 아니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이 꿨던 꿈이 있다. 엔딩 장면에서 우리는 그 꿈들을 본다. 연기하는 여자와 재즈 하는 남자가 만나 계속 행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랑은 선택받지 못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 빼고, 모든 것이 행복하다.
<라라랜드>를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재즈와 연기, 바bar와 영화, 손님과 관객 모든 것이 있다. 그럼 미아와 세바스찬이 뜨겁게 나눴던 사랑은 어디 있는 것일까. 3번째 보고 나서 발견했다. 세바스찬의 마지막 연주 안에, 미아의 눈빛 안에 녹아들어 있다. 그 사랑은 앞으로도 세바스찬의 손가락 위에서, 미아의 표정 위에서 영원할 것이리라. 우리가 <라라랜드>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키보드 위에서, 기타 위에서, 종이 위에서 계속해서 녹여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