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 우리가 '귀여니'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을 시절.
소문이 자자해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크리스틴은 사랑스럽기도 하고,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간혹 쥐어박고 싶을 만큼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에게 옅게 베여있는 꼰대의 기운을 느껴버린 것이다.
이토록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뻔하고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관찰력이 높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외계인이 내려오고, 시간 여행도 가끔 해주며, 비브라늄으로 온몸을 감 싼 황제님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지만(난 <어벤저스>의 팬이다) 재밌다.
영화 속 크리스틴이 내가 하던 짓을 똑같이 하는 걸 보고 내린 결론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춘기 시절의 우리들은 비슷한 모양의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각각의 방식으로 극복해나간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정해졌을 시기. 내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했던 나날들도 결국은 너네들과 똑같았다는, 조금은 씁쓸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영화다.
그러나 약간의 반항심으로 이 영화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이야 <소공녀>의 '미소'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현실 속 사원(1)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도 특별하고 아팠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날고 싶은 레이디 '버드'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 역시 날고 싶다. 아직까지도.
그래서 이 영화는 [나만의 이야기]이다.
귀여니의 소설을 보며 18살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 소설에서 주인공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었고 미성년의 신분으로 이루기엔 어려워 보였던 수준 높은 성공과 목숨까지 걸 수 있는 뜨거운 사랑까지 쟁취해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소설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리스틴은 어서 새크라멘토를 떠나서, 뉴욕으로 가고 싶다. 요즘의 나로 치자면 독립해서― 새하얀 벽지로 도배하고, 이케아에서 산 심플한 가구들로 인테리어를 하고, 벽 한쪽에는 빔프로젝트를 쏴서 잠들기 전까지 영화를 보며 살고 싶은 마음.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이렇다. 특출 나게 예쁘지도 않고, 부모님이 부자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개천을 다 뒤엎고 승천할 용이 못 된다. 30명 중에 그럭저럭 13~18등을 왔다 갔다 하는 삶.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왜인지 나를 둘러싼 많은 것에 불만이 생기는 시절이다.
크리스틴은 스스로에게 '레이디버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뮤지컬 연습을 하다 만난 꽤 귀여운 남자애와 연애도 해보고, 헤어지기도 해본다. 잘 나가는 여자애와 친해지기 위해 절친을 잠시 멀리하기도 하고, 세상에 무심하지만 잘생긴(!) 남자애와 사귀기도 하고, 첫 섹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나에게 너무나 벅차 견딜 수 없었던 파도 같은 일들. 그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파도를 타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 내가 꼰대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때는 그렇게 아팠는데, 크리스틴을 보면서 귀엽다 미소 짓게 되다니.
누구에게나 성장 서사가 있다. 하나의 세계를 졸업하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가 생긴다.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해줄 것이다. 나 또한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따로 있다. 레이디버드는 그 방법을 가장 격렬하게 찾고 싶어 하는 시절을 담고 있다. 아쉽지만 그 시절이 끝난다고, 찾아다니던 방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건 약간 절망적이기까지 한 말이지만, 우리는 평생 그 방법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 있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그 자체가 멋지고, 아름답고, 경쾌하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각자의 '빙봉'을 떠올렸던 것처럼, <레이디 버드>를 보면 떠오를 각자의 '새'가 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영화를 보고 나면 잊었던 그 '새'를 한번 불러보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와 엄마를 용서하는 시간. 그리고 위로하는 시간.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에게도 잘했다 말하는 성숙한 시간이 오겠지. 그러나 더 이상 철들지 않기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를.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새'의 시절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