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박 Apr 16. 2018

'비주류'를 꿈꾸는 수많은 주류

영화 <레이디 버드>, 우리가 '귀여니'의 소설 속 주인공이었을 시절.

 소문이 자자해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크리스틴은 사랑스럽기도 하고,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간혹 쥐어박고 싶을 만큼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에게 옅게 베여있는 꼰대의 기운을 느껴버린 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토록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뻔하고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관찰력이 높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외계인이 내려오고, 시간 여행도 가끔 해주며, 비브라늄으로 온몸을 감 싼 황제님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지만(난 <어벤저스>의 팬이다) 재밌다.

 영화 속 크리스틴이 내가 하던 짓을 똑같이 하는 걸 보고 내린 결론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춘기 시절의 우리들은 비슷한 모양의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각각의 방식으로 극복해나간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정해졌을 시기. 내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했던 나날들도 결국은 너네들과 똑같았다는, 조금은 씁쓸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영화다.

 그러나 약간의 반항심으로 이 영화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이야 <소공녀>의 '미소'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현실 속 사원(1)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도 특별하고 아팠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날고 싶은 레이디 '버드'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 역시 날고 싶다. 아직까지도.

 그래서 이 영화는 [나만의 이야기]이다.





그놈은 멋있었다..☆

 귀여니의 소설을 보며 18살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 소설에서 주인공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었고 미성년의 신분으로 이루기엔 어려워 보였던 수준 높은 성공과 목숨까지 걸 수 있는 뜨거운 사랑까지 쟁취해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소설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리스틴은 어서 새크라멘토를 떠나서, 뉴욕으로 가고 싶다. 요즘의 나로 치자면 독립해서― 새하얀 벽지로 도배하고, 이케아에서 산 심플한 가구들로 인테리어를 하고, 벽 한쪽에는 빔프로젝트를 쏴서 잠들기 전까지 영화를 보며 살고 싶은 마음.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이렇다. 특출 나게 예쁘지도 않고, 부모님이 부자도 아니고, 나 스스로도 개천을 다 뒤엎고 승천할 용이 못 된다. 30명 중에 그럭저럭 13~18등을 왔다 갔다 하는 삶.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왜인지 나를 둘러싼 많은 것에 불만이 생기는 시절이다.

레이디버드 혹은, 그리고, 동시에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스스로에게 '레이디버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뮤지컬 연습을 하다 만난 꽤 귀여운 남자애와 연애도 해보고, 헤어지기도 해본다. 잘 나가는 여자애와 친해지기 위해 절친을 잠시 멀리하기도 하고, 세상에 무심하지만 잘생긴(!) 남자애와 사귀기도 하고, 첫 섹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나에게 너무나 벅차 견딜 수 없었던 파도 같은 일들. 그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파도를 타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 내가 꼰대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때는 그렇게 아팠는데, 크리스틴을 보면서 귀엽다 미소 짓게 되다니.





나만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성장 서사가 있다. 하나의 세계를 졸업하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가 생긴다. 가족들은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해줄 것이다. 나 또한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따로 있다. 레이디버드는 그 방법을 가장 격렬하게 찾고 싶어 하는 시절을 담고 있다. 아쉽지만 그 시절이 끝난다고, 찾아다니던 방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건 약간 절망적이기까지 한 말이지만, 우리는 평생 그 방법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 있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그 자체가 멋지고, 아름답고, 경쾌하다.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을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 작은 조각이 채워진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각자의 '빙봉'을 떠올렸던 것처럼, <레이디 버드>를 보면 떠오를 각자의 '새'가 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영화를 보고 나면 잊었던 그 '새'를 한번 불러보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와 엄마를 용서하는 시간. 그리고 위로하는 시간.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에게도 잘했다 말하는 성숙한 시간이 오겠지. 그러나 더 이상 철들지 않기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를.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새'의 시절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간절히.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꿨던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