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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Apr 05. 2018

콩 심은 곳에 팥이 나기도 한다

영화 <똥파리>, 가족이라는 콩에 대하여.

 이 영화는 힘든 상대였다. 적나라한 폭력신에 영화 끄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 결국 다 봤다. 세상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기분 좋아지는 영화도 많다. 그러나 <똥파리> 같은 영화도 많다. 주인공과 함께 슬퍼하다, 기뻐하다, 비참해지다가... 결국에는 엔딩 크레딧을 끝으로 영화 속 인물들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똥파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을 등에 업고.


영화 <똥파리>



부전자전 : 콩 심은 데 콩 난다

 영화의 내용을 말하자면 이렇다. 용역 깡패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훈이 있다. 짜증 나는 사람이 있으면 패 버리고, 대통령이 앞에 있어도 욕을 할 사람이다. 그리고 상훈이 뱉은 침에 맞은 여고생 연희가 있다. 깡패 같은 상훈이 무서울 법도 한데, 꽤 대등하게 맞선다. 둘 다 가정 안에서 큰 상처를 받았는데, 어찌어찌 가족끼리도 얽히고 얽혀 서로를 치유해가는 힐링 영화(?)다. 참 잔인하다. 상훈과 연희의 상처로 우리가 치유를 받으니까.

상훈과 연희 그리고 상훈의 조카


 상훈의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를 때렸다. 그래서 상훈은 맞는 여자를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맞고 있는 여자도 답답하고, 때리는 남자도 기가 차다. 15년 만에 출소한 아빠를 때리며 소리친다. "왜 그랬어, 왜!" 하지만 아빠 때문에 죽은 여동생도, 엄마도 돌아오지 않는다. 때리는 아빠 밑에서 자라서일까, 깡패 일을 한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상훈의 아빠도, 맞으면서 자랐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를 때렸던 저 남자, 상훈의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연희의 아빠는 월남전 참전 용사다.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하다. 연희는 고등학생이 몰라도 되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친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세상... 연희와 같은 세상을 보며 자란 남동생 영재가 있다. 영재는 학교 말고, 친구 따라 용역 일을 하러 간다. 영재의 세상은 그게 다다. 공부를 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된다거나 하는 노력이 우스워지는.... 왜냐하면 부모가 영재에게 그런 콩을 심어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콩 심은데 콩 난다는 말 참 별로다. 상훈, 연희, 영재에게는 콩밖에 없는데.




한 알의 밀

 상훈은 제대로 살기로 했다. 조카를 봐서라도 사람 패는 것도 그만하고. 아빠라는 사람은 여전히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연희라는 좋은 친구도 생겼고. 이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드디어, 콩 심은 곳에 다른 새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훈과 조카

 조카 재롱잔치에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상훈의 배다른 누나도, 상훈의 오랜 친구 만식도, 연희도 오기로 했다. 어쩌면 새로운 삶의 첫 하루가 될 수도 있었던 날이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만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저 구절에 따르면,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세상이 좀 아름다워지는 모양이다. 그 날 상훈은 한 알의 밀알이 된다. 상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이라는 열매를 가지게 된다. 상훈으로 인해 만난 사람들이, 상훈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니,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기고 만다.




콩 심은데 팥이 나기도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콩을 누가 처음 심었는지는 모르겠다. 콩, 콩, 콩, 콩이 연속으로 나다가 사랑이라는 팥이 가~끔 나온다. 물론 팥이 나기까지, 뿌려진 콩은 여러 번 죽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팥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당연하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 괜찮은 사람만 사랑을 받기에는 세상에 뿌려진 콩이 너무 많으므로, 서로의 밭에 팥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콩 심은데 팥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상훈의 누나와 상훈의 오랜 친구 만식은 결혼했을까? 연희는 상훈을 어떻게 기억할까? 엔딩 크레딧 속으로 사라진 저 작은 동네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영화 <똥파리>는 나에게 단순하지만 참 어려운 숙제를 주고 갔다. 나는 나의 팥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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