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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Sep 06. 2018

류이치 사카모토:Life, Life

핫플을 찾아서(1)



 2018년 <김수영문학상>은 9월 5일에 마감된다. 적어도 시 50편을 써내야 한다. 수상하면 응모한 50편의 시로 시집을 낸다. 시인을 꿈꾸는 누군가가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해서, 등단과 시집 출판을 한꺼번에 해치우면 참 멋지겠지. 그 멋진 걸 꿈꾸느라 브런치에 소홀했다. 시 50편이라... 그냥 시도 아니고, 시집에 실릴 50편이라.... 50편을 다 채웠는지, 그래서 <김수영문학상>에 응모했는지,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먼산)


 일단은 한 달 동안 봤던 영화의 감상문과 밀렸던 에세이를 쓰려한다. 브런치의 재시작은...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회], 너로 정했다!



사진 GLINT




8월 30일, 목요일.

쏟아지던 비가 잠시 멈췄던 날.


혹시나 해서 우산을 챙기는 내 모습. 나에게서 낭만은 다 얼어 죽었구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 지언정 밖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산 들고나가지 않았는데.

아무튼 쓰지 않을 3단 우산을 가방에 넣고 점심 즈음 집을 나섰다.






사실, 이런 전시회 후기는

빅데이터가 빼곡히 쌓여있는 초록창에 검색하는 게 보통이므로,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전시회가 워낙 강렬했기에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과 글쟁이들이 모여있는 브런치에 누가 어떤 감성으로 후기를 써놨을까 궁금해할 누군가(그게 사실 나다)를 위하는 마음을 모아 써본다.






회현역 피크닉. 새로 단장했다 들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후문인데, 나는 새로운 곳을 탐방하지 않는 습성이 있으므로 들어간 길을 따라 그대로 나왔다. 그래서 정문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다른 분들 후기를 보니 정문도 있는 모양이다.

후문은 후문 나름대로 운치 있었지만 정문이 더 예쁘므로 이 전시를 간다면 후문과 정문을 둘 다 경험해보기를.






작곡가는 몰라도 음악은 안다. 모두 이 사람의 음악을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전시는 작가의 요청으로 공식적으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지만 피크닉의 융통성인지, 무음 촬영은 가능하다고 스태프들이 안내한다.

사진 촬영이 안 되는 줄 알고 노트에 메모하며 전시를 감상하다가, 무음 촬영은 괜찮다 해서 뒤늦게 핸드폰을 들기도 했다. 메모에 기대어 후기를 쓰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제목도 있을 것이고, 부득이하게 사진 없는 작품 감상도 있을 것이다. 정보 전달보다는 감상 위주로 글이 진행된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전시는 총 1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세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곳

맨 처음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품.

이 전시회는 다방면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니

머리와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시오-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② water state 1

만약 이 전시회에서 딱 하나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나는 이 방에 들어갈 것이다.


이 방에서는 한 시간은 물론 두 시간도 거뜬히 있을 수 있다.


팸플릿에 적힌 작품 해설을 써보자면,

각국의 기상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다시 압축한다.

천장에는 스프링쿨러(?)를 달고 저 검은 사각형의 조형물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연출한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저 검은 표면을 건들 때마다 단조로운 음이 연주되는데 소나기가 내리는 타이밍이면

단조로운 음들은 아이러니하게 조화를 이루며 귀를 가득 때린다.

그 무작위의 음들과 물방울의 움직임만으로 맑고 고요한 날, 태풍이 부는 날 등을 느낄 수 있다.


이 전시회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이 작품은 고집과 인내와 예술의 정반합을 보는 듯했다.


'물의 순환'에 대한 작가의 집착이 점점 스케일이 커져 지구의 기상 정보를 모으게 된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물의 순환을 재해석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길고 긴, 어쩌면 지나치게 과학적인 과정들이 결국에는 저 검은 테이블로 압축되고 또 압축되어 우리의 눈 앞에 예술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나는 세상에 예술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확신한다. 굳이 시를 쓰지 않는, 음악을 하지 않는, 춤을 추지 않는 일반인 중에는 분명 엄청난 예술가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무언가를 '남기는 것' 혹은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적 사고방식 그 이상의 재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전시회의 모든 작품이 그렇다. 모든 것이 남겨지고, 만들어졌다.




③ Insen

마치 영화 <송투송> 볼 때 혹은 강백수의 음악 <CKP>를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뭐지?"


 Insen은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맞은편에서는 알바 노토가 전자음악을 연주한다. 이 미묘한 조합은 대중에게 조롱당한 피아노라는 악기의 지위 회복을 꾀하고, 어쿠스틱과 전자음악 간의 균형과 역할을 재정의하려고 한다.


전자 패드와 피아노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어있지만 연주자와 연주자를 잇는 기다란 전광판이 마치 그 둘 사이의 다리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해놨다. 이게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데 사진으로 보자면


피크닉 인스타그램 / 사진 Jacqueline Schulz



이렇다.

전시회의 인센 영상은 15분 정도. 감상이 끝나면 바로 옆에 마련된 작은 스크린으로 다른 인센 연주 영상도 볼 수 있다. 다른 인센 영상을 보니 메인으로 걸어놓은 이 인센 연주는 좀 잔잔한 타입이더라.


15분을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저 연주를 라이브로 보고 있는 관객들은 괴짜 예술가들에게 희생당했다'였다.

그만큼 나에게 어려운 연주였다.





④ All star video

어쩌면 우리에게도 친숙한 백남준. '류이치와 백남준이 친한가? 역시 천재끼리는 통하는가?'같은 지극히 일반인스러운 생각에 젖어있다가 영상을 봤는데, 5분을 견디지 못했다. 팥죽송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을 기억하는가? 그 느낌이다.





⑤ on async

async : 2014년에 앨범 제작을 준비했지만 암 진단을 받고 즉각 중단하였다. (중략) 새하얗고 커다란 컨버스를 앞에 두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를 아날로그·신시사이저로 표현할 것.

-바흐의 코랄을 옅은 안개가 낀 음색으로 바꿔볼 것. 마치 규칙이 없는 듯한 안개의 움직임 속에서 엄격한 논리가 모습을 드러내듯.

-사물(모노)의 소리를 수집할 것.

-환경음을 수집할 것. 빗소리, 폐허 소리, 혼잡한 소리, 시장 소리.

-하나의 템포에 모두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소리/파트가 고유의 템포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볼 것.


류이치 사마모토가 영감을 받았던 책, 악보 등을 전시해놨다. 그 옆으로는 그가 음악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Coda'가 재생된다. 암에 걸려서 죽을 판인데, 숲 속을 걸어 다니면서 소리를 모으고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빗속으로 뛰어들어 그 소리를 감상한다.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영감靈感을 잡아끄느냐, 영감에게 끌려다니느냐에도 차이가 있다. 내가 코다에서 본 류이치 사카모토는 끄느냐, 끌려다니느냐를 넘어서서 영감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⑥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

이 작품은 서서 봐도 된다. 하지만 누워서 보는 걸 추천한다. 이 작품이야말로 꼭 사진으로 공유하고 싶지만, 막상 작품 아래에 누워보니 핸드폰을 꺼내는 것 자체가 작품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안개와 빛, 물과 영상이 뒤섞이는 작품이다. 수조가 큰 편이 아닌데도,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고차원적인 예술이 당신을 부르지만, 마치 외계 언어 같아서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다. 이쯤 되면 해석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게 된다. 이 작품을 볼 때 느꼈던 미묘하고도 헛헛한 감정이 오래 간직되길 바랄 뿐이다.







사담을 붙이자면,


이 전시는 단단하기보다는

마치 호랑이연고같이 형태는 잡혀있지만 잘 뒤섞이는, 살에 발랐을 때 뜨겁고 화한 느낌이 드는 전시였다.


혼란스럽지만 작가의 세계가 너무 잘 보여서 외면할 수 없는.. 하지만 작가의 세계가 뭔지는 모르겠는.. 예술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게 예술이구나 싶은.. 그런 전시다.


어색한 친구하고 가면 더 어색해질 것이고

썸 탈 때 이 전시회를 간다면 썸이 당장 깨지게 될 것이다.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애인 포함)을 데리고 가거나 혼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대는 무조건 사람 적은 평일로 잡는 게 좋겠다. 영상들이 보통 10분을 넘긴다.

쓱- 보고 넘어가는 작품들이 아니니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예술혼이라는 것은 만들어내는 것인지 신에게 부여받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영감을 받고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는 전시회의 모든 작품들을 쓰지 않았다. 10월 중순까지 전시가 진행되니, 보러 가는 걸 추천한다.









                                                            나는 항상 들어갔던 길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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