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의 'ㅂ'은 V입니다.
지구인들은 이제 '마블'이란 말을 들으면 엄청난 것을 기대하게 됐다. 마블이 그렇게 만들었다. 묵직한 훅이 들어올 줄 알고 한껏 가드를 올렸는데 <베놈>같은 영화가 나타나서 솜사탕으로 날 때린다면. 약간 어이 없어 하며 가드를 내리겠지. 하지만 <베놈>이 꽤 귀여워서 화는 내지 못할 것이다. 왼쪽에는 소니라는 날개, 오른쪽에는 마블이라는 날개를 달았지만 높이 날 생각은 없어보이는 영화. 혹평이 쏟아지지만 난 재밌었던 영화. 그러나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은 <베놈> 리뷰.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기자, 에디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드레이크 박사 인터뷰를 맡게 된다. 하지만 제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자극적인 질문을 하고 만다. 이 질문은 에디가 직장, 집, 연인 그리고 정의감까지 잃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그 사이 지구의 모든 인간을 먹어버리려는(!) 계획을 가진 심비오트의 대장격인 라이엇이 말레이시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넘어오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미치광이 과학자는 자신의 신념에 사로잡혀 세상의 질서를 개무시하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 영화에서 '그 미치광이 과학자' 역할을 맡은 드레이크 박사는 베놈과 결합한 에디를 찾아오라며 'my creature'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가 인간과 심비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베놈이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을 멈출 수 없다. 베놈이 무엇과 사랑에 빠지느냐~ 하면, 생각보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일 수도 있고, 자신을 강한 놈으로 만들어주는 지구인들의 나약함일 수도 있고, 찰떡처럼 공생할 수 있는 에디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여기에서만큼은 '에디&베놈 올마이티'가 이루어지니까 지구를 떠날 이유도, 에디를 떠날 이유도 없어진 베놈은 눌러앉기로 한다.
영화 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재미없다 얘기를 들어서 기대치가 낮아진 탓일까? 나는 꽤 재밌게 봤다. 제작 과정에서 편집된 30분을 가지고 말이 많다. 그 30분이 있다해도 이 영화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캐릭터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베놈의 설정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며, 예전에 영화에 비춰진 적도 있으니 꽤 잘 만들지 않고서는 혹평을 피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지구인들은 몇 번이고 멸망 직전에 살아남은 종족이기 때문에 지구를 벗어나지도 못한 우주선 때문에 벌벌 떨지 않는단 말이다... 그만큼 영화의 스케일도 커지고, 관객들이 히어로물을 보는 눈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래, 가끔 이런 B급 아닌 B급을 봐줘야 "와, 인피니티워2 쩌는구나."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지.
연출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나타났다. 대체로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관객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논리 점프는 지양해야 하는데, 베놈은 점프력이 너무 좋다. 베놈이 언제부터 그렇게 지구를 좋아했나? 지구에서 짱이 되버린다는 놈이 저렇게 고분고분 착해도 되나? 아, CG가 원래 저렇게 티나는 거였나? 말로만 'ugly'하게 싸운다고 다 되나?
당연한 듯 쿠키영상에 다음 시리즈의 예고를 넣었다. 글쎄, 의리로만 굴러가는 시리즈가 되면 안 될텐데.
이래저래 아쉬운 소리를 써놨지만, 어쨌든 다음 베놈이 기대된다. 톰 하디가 못 찍겠다며 하차하지 않기를 바랄 뿐. 톰 하디가 연기하는 베놈 계속 보고 싶다. 소니... 마블만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 하면 돼!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놀면 됐지 뭘 더 바라는거야! 마블만큼 잘 만들고 싶은거야?! 그럼 중국 자본을 조금 빼는 거 어때..!! 마블은 중국 자본 가지고도 잘 만들지만..ㅎㅎ 어쨌든 다음 베놈은 꼭 더 잘 만들어주라. R등급으로 돌아오면 더 반가울 것 같아. 부탁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