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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Oct 18. 2018

[브런치 무비패스] 펭귄 하이웨이

우리의 첫사랑은 어디로 가는 걸까?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퇴근하고 동대문에 7시 반까지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한 후, 가장 가능성 있는 한 루트를 골라 최선을 다해 달려갔지만 조~금 늦게 도착했다. 물도, 콜라도, 팝콘도 없었던 영화 관람.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한 게 몇 년 만인지. 브런치 무비 패스로 남들보다 조금 일찍 보게 된 <펭귄 하이웨이>.





첫사랑 이야기

 내 첫사랑은 또래 남자애였던 것 같다. 왜 '~같다'라고 말하냐면 그 감정이 과연 '사랑'이었는지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남자애는 아직도 동네에 그대로 살고 있는 듯하다. 우연히 보게 되면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 과정이 웃기기는 하지만, 만나지 못한 세월이 벌써 열 손가락으로 세도 모자라니 그럴 수밖에 없나. 그 남자애는 나와 또래였고, 꽤나 친했고, 같은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을 떠올리면 삐걱거리던 내가 생각나 미소 짓게 된다. 

 하지만 <펭귄 하이웨이>의 아오야마는 오랫동안 첫사랑 누나를 떠올리며 아련해할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이가 나는 첫사랑 상대는 괴롭다. 사랑하면서도 지게 돼있고, 추억을 떠올린다 해도 어린 시절의 나는 죽어도 그 사람을 못 이기기 때문에 한 번 더 지게 돼있다. <펭귄 하이웨이>는 귀여운 펭귄으로 가족단위 관객들을 낚는 '어른들을 위한 첫사랑 애니메이션'이다.







아오야마의 사랑 탐구

 아오야마는 영화 속에서 이름조차 안 나오는 '누나'를 좋아하는 11살 소년이다. 어느 날 아오야마의 동네에 펭귄이 나타났다. 평소에도 관찰하고 탐구하기 좋아하는 과학 소년 아오야마는 본격적으로 펭귄의 출처를 알아보기 위해 동네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누나와 펭귄의 상관관계를 알게 되고, 펭귄보다 더욱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존재까지 알게 된다.



 아오야마는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공부한다. 아오야마가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종결된다. 아오야마는 그만큼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그런 아오야마가 매달리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온다. 첫 번째는 펭귄이요, 두 번째는 누나이다. 좀 더 길게 말하자면 '일본 대륙에 대뜸 나타난 펭귄이라는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사건'과 '어린 남자아이는 당분간 알지 못할 여자의 가슴에 대한 고찰'인데, 나는 이것을 좀 거창하게 비유하여 '어린아이가 사랑을 탐구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펭귄의 출현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나의 가슴처럼 궁금한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사랑은 소설로도, 영화로도, 페이스북으로도, 다른 사람의 충고로도 배우면 안 되는 것. 직접 부딪쳐보기 전엔 그 환희와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아오야마는 펭귄과 누나 그리고 초과학적인 현상을 끊을 수 있는 단서의 상관성을 풀게 되고, 관객들은 조금은 왕따 당하는 기분으로 사건의 해결을 보게 된다. 아오야마와 누나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너, 비밀을 알게 됐구나?" / "네. 그래요." 하는 걸 쳐다볼 수밖에 없는 우리들... 끝까지 굳이 펭귄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며, 누나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마저 '둘의 사랑은 그 둘만 알게 하자'라는 감독의 의도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너무 궁금한걸.






가지지 못한 것이 아름다운 법

 아오야마는 아직도 해야 할 것이 많다. 중학교도 가야 하고, 누나를 찾으러 우주도 가야 한다.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바다를 보러 갈 일도 남았다. 어쩌면 아오야마는 살아가는 동안 누나를 잊고 여자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그 여자 친구와 바다로 여행을 갈 수도 있다. 탐구 정신이 사그라져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 될 수도 있다. 성인이 되면, 여자의 가슴은 궁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지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던 것들은, 가지게 되면 시시해지고 당연해진다. 아오야마에게는 누나도 펭귄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일이었다지만, 나중에는 아오야마가 작은 꼬마에게 또 다른 초자연적 첫사랑이 될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감독은 11살짜리 남자애가 성인 여자의 '가슴'을 가장 궁금해할 것이라 여긴 모양인데, 글쎄 난 좀 반대다. 차라리 매일 무뚝뚝한 표정으로 치과에서 석션을 하는 치위생사의 괴로움을 궁금해하길 바란다... 누나는 매일매일 치과에서 석션하는 것이 괴로워서 자유를 갈망한 평범한 치위생사가 아니었을까..? 나는 누나가 펭귄을 타고 자유를 향해 도망친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첫사랑과, 초등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면서. <펭귄 하이웨이> 리뷰를 마친다.

치위생사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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