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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Jan 20. 2019

하루에 70km

나의 출퇴근길

 우리 집과 회사의 물리적인 거리는 약 35km다. 퇴근길까지 합치면 하루에 약 70km를 오고 간다. 지구 한 바퀴가 40,000km라고 하니 벌써 지구를 몇 바퀴 돌았다. 지구의 둘레도 별 거 아니네. 한낱 뚜벅이 직장인의 매일매일이 쌓이니 지구 한 바퀴쯤은 금방 돌게 된다.


 세상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고, 지구는 자전하고,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출근해야 한다. 아침 해가 떠오른다. 20년 넘게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던가. 나는 지하철에 뿌리를 내린다. 가만히 서서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지하철의 유리창을 거울 삼아 스스로와 눈싸움을 하다 보면 바깥 풍경이 번개처럼 나타난다. 세상 끝까지 뻗어가는 햇빛이 보인다. 이 네모난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 마음속으로 몰래 동지애를 가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치 않은 눈치 게임에서는 질 수 없다. 이렇게 나의 출근길은 소소하고 부지런한 싸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한 나와의 싸움, 지하철을 타기 위한 시간과의 싸움, 자리에 앉기 위한 이름 모를 동지들과의 싸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직장인이란 꽃은 피어난다. 퇴근길은 비교적 다채롭다. 어느 날에는 오래전에 예매한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길이 되고, 어느 날은 가고 싶었던 카페에 방문하는 길이 된다. 출근길에는 지하철 속에서 웅크린 채 '옮겨졌다'면, 퇴근길에는 지하철과 '함께 달린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열고 닫히는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같이 열렸다가 닫힌다. 회사에서는 닫혀 있던 마음에 조금 공기가 통하는 기분이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져서 저녁 7시면 하늘이 어둑어둑하다. 출근길에는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면 창문 속에서 내 모습이 사라졌는데, 퇴근길에는 밖이 어두워 지상을 달려도 내 모습이 창문에 비친다. 가끔 지쳐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원하는 곳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을 싫어한다. 퇴근길의 꽉 막힌 도로 역시 달갑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사람들을 비추는 출근길의 햇빛을 사랑한다. 퇴근길의 행복을 얻기 위해 괴로운 출근길에 올라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매일 70km를 오가는 나를, 조금은 칭찬한다. 앞으로 지구를 몇 바퀴나 돌게 될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고, 나는 내일의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침대에 누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문을 외워본다. "감사합니다. 내일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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