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박 Mar 20. 2018

너의 이름은

일본 애니메이션 말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 리뷰.

 지식채널-e에서 지나가며 봤던 내용이 생각난다. 노인들에게 배경 및 소품들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고 생활하도록 했던 실험이었다. TV 프로그램도 그 시절의 운동경기를 중계하고, 노인들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대화를 나눈다. 7일간의 생활이 끝나고 실험 결과가 나왔다. 참가한 8명의 노인들 모두 시력, 청력, 기억력, 지능, 악력 등이 신체나이 50대 수준으로 향상됐다.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설계한 실험이었다.


 디스토피아적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설명하기에는 예시가 동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저 실험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영화와 실험이 같은 주제를 관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인간

 리플리컨트를 잡는 리플리컨트. 블레이드 러너 K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오래전 도망 간 리플리컨트를 퇴역시키는 작업이었다. 별 다를 것 없던 이 임무가 K의 삶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다. 리플리컨트는 복제인간으로, 인간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는 입장이다.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이 영화가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리플리컨트들이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축적을 위해 가짜로 심어진 기억을 갖고 살더라도, 그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슬픔, 사랑, 고통, 욕망...

<출처:네이버 영화>


  K는 자신이 퇴역시킨 리플리컨트가 큰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생산되는 존재였던 자신들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전편의 블레이드 러너 데카드 형사는 리플리컨트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다.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K는 그 아이를 찾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흔적을 추적하는 중에 자신이 그 '최초'의 아이라는 단서들을 찾아낸다. 자신은 만들어진 것이 아닌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리플리컨트를 심사하는 질문들을 완벽히 소화하여 언제나 기준선을 맞추던 K는, 자신이 태어났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휩싸이자 기준선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된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태어났다"라는 사실만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은 그를 태어나게 만드는 강력한 주문이다. 그가 만들어진 존재라 할지라도, 그 강력한 마법의 주문은 그를 태어나게 한다.




이름을 가진 인간

 태어난 아이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는데, 그 아이가 결국은 자기였다. K가 내린 결론은 우리에게 익숙해 보인다. 오이디푸스적 서사를 띄고 있는 것이다. K가 사실을 파헤칠수록, 자신은 죽음에 가까워진다. 평생을 도망쳐 다니는 태어난 리플리컨트가 되거나, 본부에 가 자수를 하고 죽임 받거나. K는 사랑하는 존재에게 '조'라는 이름을 지음 받는다. K의 삶이 1부라면, 조의 삶은 2부가 된다. 조는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는 데카드를 찾아간다. 둘은 술 한 잔을 하게 되고, 이때 재생되는 음악은 부자父子의 미래를 노래하는 것 같다. 친구여, 우리 술 마시자. 이야기의 끝까지. We're drinking my friend, to the end of a brief episode. Make it one for my baby and one more for the road.

 윌레스 사는 생식 가능한 리플리컨트의 단서인 데카드를 납치해가고, 조는 버려진다. 조는 이름을 받은 순간부터 명령이 아닌 선택에 의해 행동해왔다. 리플리컨트들의 혁명을 도우기 위해선, 조는 아버지라 여겼던 남자를 죽여야 한다. 조는 데카드를 죽이기 위해서든, 살리기 위해서든, 윌레스 사의 러브와 혈투를 벌이게 된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러브를 죽이고 데카드와 빠져나오는 그 장면은, 마치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숨을 쉬며 나오는 갓난아기의 모습 같다. 조는 새로 태어난 것이다. 

러브를 죽인 후, 데카드와 조. <출처:네이버 영화>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이름을 갖는다

 리플리컨트인지, 인간인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나체의 여자 홀로그램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매춘이 성행한다. 진실된 사랑 같은 건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저 배고프면 먹고, 섹스하고 싶으면 뒹굴고, 졸리면 자면 되는 본능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일. 얼마나 무겁고 쓸모없는지. 아이러니하게도 SF는 그렇기에 가장 인문학적인 장르가 된다. 회색빛 도시에서 조는 가장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 고민했고, 결국은 찾아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은 나무 밑에서 조가 발견한 노란 꽃처럼 말이다.


 노인들이 50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50대의 능력을 갖게 된다. 리플리컨트가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태어나게 된다.


 이 영화가 나에게 주는 질문을 이렇다. 앞으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로맨틱 사이버 러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