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검객

by 남연우



삿갓을 눌러쓴 조선의 검객劍客 사인방이

물러설 수 없는 험지에서 발부리 각을 세웁니다

상대 허점을 노리는 예리한 눈빛

음영 깊숙이 찌릿찌릿,

검과 검이 맞부딪는 소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복판

땀방울을 두 쪽으로 갈라놓습니다



얼마나 오싹 소름 돋던지요

나아감에 주저 없이

물러섬에 주춤 없이

상하좌우 난기류의 급소를 파고듭니다

돌개바람을 가르는 태풍의 눈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쭉 뻗어 치고받고

날이 사선으로 떨어지는 그 찰나

번개 같은 불꽃

쌍검무를 보는 듯

직사광선이 부러져 오색 무지개를 그려냅니다


옛 주막에 걸터앉아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괴나리봇짐을 걸머진

길 떠나는 나그네여,

정신일도 눈썹 위에 뜬구름을 얹어

재바른 발뒤꿈치 보일 듯 말 듯

재 넘어가는 조선의 검객이여,



승리의 초록 반딧불이

깜박깜박 밤하늘 은하수에 어룽집니다

훤칠한 키, 인물도 좋습디다

그대들 목에 건 우승의 골드메달

세렌디피티 여신 미소가 환합니다



웃음이 귀해진 가가호호

소낙비 내리듯 박장대소 함성이

창문 밖으로 넘쳐흐릅니다

새파란 억새풀 같은 조선의 검객이여,

산모롱이 아물아물 돌아가는 이여,



진분홍 백일홍 초롱불 밝힌 그대들의 여름밤

꿈이 아니었어요

별들의 각진 이마 위로

다이아몬드 영롱한 빛, 눈이 부셔요

짜릿한 이 쾌감 열대야라니요

대청마루 시원시원 댓잎 바람 듭니다

아, 잊지 못할 거예요

이 여름!




도쿄 2020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경기를 보면서

한방에 더위를 날려 보냅니다.

어쩜 그리 정확하고, 민첩하고, 빈틈이 없는지

검과 검이 맞부딪는 금속성 창검 소리

우박이 떨어지듯

시원하게 고막을 두드립니다.


그 멋진 대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이 조선의 검객 후예가 아닌가

뼛속 깊이 물려받은 DNA가 있지 않나

그래서

로마 검사들을 무찌르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최근에 다녀온 한국민속촌 풍경이 뇌리에 남아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더위가 한창 내려앉은 옛 거리 주막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 그림자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북부 민가 8호 집에는

나리꽃이 조붓하니 피어있었죠.

대갓집에는 능소화가 솟을대문 담장을 뒤덮어 흘러내렸구요.

관아 옥사에 들어가니

그곳이 제일 시원했더랬죠.

산 밑이라, ㅎㅎ~~


한낮의 농악놀이 부채춤추는 여인들은

몇 안 되는 우릴 위해

구슬땀을 흘려주었습니다.

주막에 당도하여 뚝배기 뜨거운 장국밥 한 그릇 말아먹으며

옛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절절히 느껴보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그 맛이라니!

가마솥에 펄펄 끓여서 그런지 내 집 냄비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진국이 끝내주더라구요..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해 먹고 산 조상들의 궁핍함, 처절한 여름 나기가

피부 깊숙이 체감되었습니다.

바람은 납작 엎드려서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지

산그늘이 아닌 평지 초가집들은

대책 없는 불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숨 죽이며 살아냈을까요?


나오는 길에 귀신의 집에 입장

첫 씬부터 깜깜하고, 탈것은 안 보이고

방 안에 이불 뒤집어쓴 시신 인형이 누워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되돌아나가서 입장 출입문을 두드렸습니다.

직원이 그 방을 들어가서 그대로 통과하라는데

음음,,

전설의 고향 세트장 같은 무서움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데

(서낭당 구미호 소복 여인 등등)

딸내미들은 소리소리 질러댑니다.


전용 4인 바이킹을 타보았습니다.

글쎄요, 몇 년 만인지

이번에는 제가 소리소리 질러댔습니다.

"제발 내려주세요!"

장난기가 스민 직원은 내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젠 이런 거 타면 안 되겠구나, 소리 지르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그날 저녁 속이 메슥메슥 어지러운 후유증을 겪었죠.


무더위 땀 부채춤 아궁이 장터국밥 능소화 백일홍 물레방아 전설의 고향 바이킹...

머릿속이 뱅뱅 도는

여름, 한여름입니다.

땡볕과 그늘이 어우러져 견딜 만한.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도 열성껏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오월의 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