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봄비

by 남연우

_남연우




거기 누구시오?

들릴 듯 말 듯 문 두드리는 소리

나요

나 모르겠소?

아, 험한 밤길에 어찌 찾아왔소

이리 귀한 걸음 내었소

날 먼저 부르지 않았소

한달음에 달려왔소

수직강하 낙하했소

부딪쳐도 깨지지 않는

신출귀몰 낙법으로, 허허-

어서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반 잔 술이 한 잔 술

넘치도록 따르시오

마셔 드리리다

단 한 번도 내준 적 없는

투명하고 무거운 다이아몬드 정신

제발 좀 가져가시오

58면 컷팅 세공 깎이고 깎여

인정미라곤 없는 날카로운 번득임 뿐이오

수만 가닥 신경이 몹시 예리하오

가끔은 무딘 덩어리로 웅크리고 싶소

분별심이라곤 없는 날것이고 싶소

실없는 사람 되어 헛웃음 짓고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고 싶소

소심하고 겁 많은 이 사람

불량한 사람이고 싶소


늘 반듯한 이 정신이 권태롭소

지긋지긋하오

내 별의 궤도를 벗어나면 어찌 되는지 아오?

별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떨고 있소

난 고원의 야생화라오

남의 시선 따윈 관심 밖이오

도시 화분에 심긴 지 삼십 년

뿌리가 자라서 갑갑하오

화분이 터지든지 내가 뽑히든지

결단의 날이 가까워진단 말이오

그날을 생각하면

마이크로 입자로 부서지는 안개, 안개 미로에

갇힌 느낌이라오

내 발로 떠나온 야생의 대지는

나를 반겨줄지

다시 눈부신 기쁨 두 발의 자립을 수락할지

가늠이 안 된단 말이오

흙을 멀리한 약골 감싸줄 빛은 어디에

돌아가고 싶소

떠나온 그곳으로

손바닥만 한 땅뙈기 농막이면 어떻소

씨를 뿌릴 것이오

꽃씨를,

내 키보다 큰 해바라기를 키울 것이오

밤낮으로 번쩍이는 황금 집의 안주인이 될 것이오

초사흘 달이 기웃거리는 창가에 서서

턱을 괴고 싶구려

내 심장을 거기 우주의 리듬과 조율하고 싶소

생성과 소멸

자연 아니겠소


알겠소

그리 하시오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소

그때도 내 찾아갈 터이니

문전박대하지 마소

그대의 갈망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바람

예지력 눈매를 가진 바람이 불어와 그대의 원을 들어주리

가장 강력한 다이아몬드의 빛이 향하는 그곳으로

이미 취하였소

그만 따르시오

아니, 따라 드리리다

마저 드시오

흥건히 취하시오

나의 술은 주독이 없소이다

취할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붉은 장미 꽃잎 따서 발효한 장미주라오

향기에 취할 뿐이라오

새벽이 올 때까지

그대 한 잔 나 한 잔

못다 한 이야기 나누고 싶소


기꺼이 들어 드리리다

거리낌 없이 다 털어놓으시오

가진 거라곤 잘 생긴 이 귀밖에 없소

귀밝이술을 너무 마셨나 보오

입술이 아니어도

그대 문드러져 까매진 속 훤히 보이오

너무 아파하진 마오

반가운 친구처럼 대해주면 고맙겠소

말하지 못한 응어리들 내게 주시오

다 가져가겠소

다 씻어드리겠소

단 반품은 안 되니 환불 규정 꼼꼼히 챙기시오

상냥한 그대 목소리

고막을 두드리고

깊은 골짜기 비밀 잠금장치 해제한 뒤

내게로 와서

산뜻한 새사람 만들어주는

자음과 모음이 해체된 나의 언어를 읽고

지친 물고기 별자리 무료 상담해주는

그댄,

밤새워 내 오월의 창가에 속삭이는 하늘의 목소리

허스키한 저음의 물방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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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부딪치며

우수관을 타고

밤새 흘러내리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여름 장맛비와는 목소리의 톤 음질 발성법이 달랐습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방울을 세듯이 톡톡 튕기면서

톡(Talk)을 건넵니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도 들리구,

쉼표를 잔뜩 찍어가며

뭐라고 하는데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술잔에 술을 천천히 따르며

잔에 담긴 술이 조금씩 넘치는 소리를 내며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두 귀로 술을 마십니다.

전혀 취하지 않고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말짱한.

창밖에는 울타리에 붉은 장미들이 한창입니다.

한밤중에 진한 향기를 내뿜는 장미 꽃잎들을 스쳐

흐르는 빗물은 장미주,

향기로 취하고 빛깔로 취합니다.

주거니 받거니

지금 내 마음 안에 든 생각

다 읽어주고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

오월의 봄비!

묘한 힐링을 줍니다.

또 듣고 싶네요.

느리고 차분한 그 음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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