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있는 골목길

by 남연우

_남연우



전봇대 위에 얹힌 산동네로 가는 길에

톱니가 깨진 계단들, 수북하게 쌓인

골목길이 있다


수평 수직 줄무늬가 교차하는 올올이

동그란 껌딱지들 신경 사납게 눌어붙은

그 길


슬그머니 내다 버린 화초들이

길냥이들 정원이다

뚜껑 열린 택배 상자가 노숙 여관이다


굴러다니는 삼선 슬리퍼 한 짝 위로

무거운 한숨들이 구김살 진 층계참


주렁주렁 비닐봉지 민들레 세 든

옆집에 내려놓고

과속방지턱에 걸린 초대형 하늘에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나자

턱하니 얹힌 속이 다 후련해진다


어묵탕 훈김 쐬는 계단 중간 분식집은

갈 길 바쁜 겨울 광선의 임시 정류소


막바지 송곳 걸음,

찔러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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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D. YOUNSEO

송판에 펜으로 그림.



여기 상앗빛 대리석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고대 제사장이 신에게 헌화하기 위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해

불길이 타오르는 제단을 향해

경건한 발걸음으로 내딛습니다.

한 계단씩 오르는 그 행위는

인간에서 신에게로 다가가는 숭고한 의식입니다.


여기 삐걱대는 남루한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계단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

한 걸음 내딛자 아찔하게 출렁입니다.

아, 아직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당신의 거부반응이군요!

그래도 조금씩 다가가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절반쯤 오르노라면

당신도 절반쯤 내려와서

우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저기 깨져나간 시멘트 계단입니다.

가파른 산비탈, 일조권은 평등한, 산동네로 가는 길입니다.

계단 길은 물리적으로 강제된 걸음을 요구합니다.

강요된 길입니다.

시각적으로 엄청 부담스러운 길입니다.

내 걸음의 각도와 보폭을 맞춰야 하니까요.


앞집 윗집 아랫집 살림 속사정이 길거리로 삐져나오는

그 길,

민들레가 한 살림 피어나구요.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갑니다.

누군가의 한숨이 머문 층계참은 기다란 의자가 되어

관절통 아픈 다리를 쉬게 합니다.


어묵탕 솥단지가 내뿜는 훈김을

갈길 바쁜 겨울철 직사광선이 잠시 머물다 갑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큰일입니다.

연탄재를 빠개서 뿌려야 하니까요.


엘리베이터를 불시에 점검하는 날에

가끔 걸어보는 계단 길,

숨이 헐떡거리네요.

계단은 계단입니다.




제목 이미지 호주 착시 계단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