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사거리

by 남연우

_남연우



반 천 년 대들보와 서까래를 받쳐

둥근 그늘을 보살피는

느티나무 사거리

염천에 맞불 지핀 초록 잎사귀로

누빔을 층층 기워 잇는, 나무는

허파를 팽팽하게 부풀려서 그늘막을 세운다

검은 아스팔트 사막을 건너온 카라반이

열독 오른 낙타의 목줄을 풀고

그을음 엉긴, 찻잔에

모카 차를 따라 마시며

잠 못 드는 열대야


아가야 꽃잠 태운 유모차가

열 바퀴쯤 돌고 있고

숫제 더위 먹은 아이들이 빙글빙글

뛰어다니는 느티나무 사거리


우산살이 부러진 둥근 그늘이

게릴라성 폭우에 그만, 떠내려갔다

종일 땡볕 공터 돼버린

느티나무 사거리


그루터기 바싹 붙은 아기 그늘을

누가 업어 키우려나




거주지 근처에 수령 오백 년, 느티나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그늘이 얼마나 깊은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었죠.

이 지역 명물로서 거리 이름도 느티나무 사거리입니다.

느티나무 그늘이 깊은 이유는 촘촘하게 뒤덮인 나뭇잎 때문이죠.


무성한 초록잎을 기워 입은 나무는, 360도 아우르는 원만함과 후덕함으로

사람들을 품어주었답니다.

그런데,

흉사가 벌어졌습니다.

2018년 폭우를 맞고 나무는 갈가리 찢겨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나무의 속살은 골다공증을 앓은 듯이 텅 빈 모습이었어요.

그늘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의 안식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 시는 느티나무 사거리의 네모 이미지에

나무의 원형, 아가를 재우는 유모차의 자그만 소용돌이, 빙글빙글 도는 아이들의

둥근 이미지를 교차시켜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뜨거운 아스팔트를 건너온 직장인들이 캔커피 한 잔에

넥타이 줄을 풀면서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모습에서

사막의 대상 행렬을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떠내려간 건 우산 살(나무 기둥)이 부러진 그늘이겠죠.

형체가 사라진 그림자!

나무는 정말 대단한 존재입니다.

우린 우리의 그림자로 무얼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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