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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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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ug 23. 2022

처서



더위에 널브러졌던 몸을

반듯이 고쳐 세운다     


더워서 못 했다는 핑계를 대지 않기로 한다

무더워서 미루었던 일들 하기로 한다     


습기를 먹어 제멋대로 자란 곱슬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가라앉히고

바람에 실려 온 풀 내음 강물 내음

먼 데서 소식이 끊긴 친구 안부가 궁금하다     


천천히 흘러가는 흰 구름에

집게로 걸어놓은 홑이불

눅진하게 젖은 돗자리도 말린다     


지친 여름살이 흔적 들킬까 봐

회피 반응 보이던 빛줄기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걷기 좋은 신발도 꺼내 놓았다     

한풀 꺾인 더위

한풀 꺾인 기세


내 오만함도 꺾일 때가 되었다

무르익으려면 기꺼이 무릎을 구부려야 한다     


반팔 반바지를 접어 들이고

새로 꺼내 입는 까슬한 촉감의 가을 옷


경이로운 시간이다

새물이 들이친다          







          


* 새물- 새로 갓 나온 과일이나 생선 따위를 이르는 말,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 새로운 사상이나 경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늘은 처서입니다

처서, 발음하면 뭔가 처연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널브러져 구질구질한 습관 살림살이 싹 다 정리하여

새로운 마음과 각오를 다져

다가서는 가을을 맞이해야 할 것 같은 자세를 요구받습니다

바람결에

마른풀 내음, 갯내음이 밴 강물 내음도 나고요

탱글탱글 가볍게 바람을 타는 공기 알갱이처럼

바람 빠져 굴러가는 일상의 타이어를

빵빵하게 채워 넣어야겠습니다

좀 더 수용적인 태도

겸손한 자세

무릎을 구부려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반팔 반바지를 접어 들이듯

옷장을 다시 순환시키듯

경이로운 시간이 오가는

이 절기,

새물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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