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이 얼룩지는 창가에 카페를 차렸다.
원래 있던 발코니 화분 가까이 소반을 갖다 놓고 주방에 있던 산세베리아를 옮겨두자 녹색 싱그러운 분위기가 살아난다. 마시던 빨간 머그잔을 두니 핫플레이스 부럽잖은 일인 전용 카페가 급조되었다.
일요일 유리창을 연신 두드리는 빗소리마저 아늑하게 들린다.
쨍쨍 내리쬐는 불볕 맑은 날씨였다면 이 공간에 얼씬하지 못했을 것이다.
빨래를 널 때도 차양모자를 쓰고서 자외선을 경계하던 공간이었다.
십 년 넘게 키우던 아이비가 요즘 들어 비실비실하다.
한쪽 벽면을 푸른 담장으로 꾸며주던 고마운 식물이었는데 벽 코너 깊숙이 빛을 받아들이지 못한 설움이 맺혔나 보다. 볕이 들게 자리를 옮겨주어야겠다.
불과 1미터 벗어나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으면 비바람과 한통속 거친 황야의 느낌 재현되지 않는다.
두 뼘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데려온 빗방울들이 마시는 커피잔으로 급히 들어온다.
빗방울이 가미된 커피맛은 여느 날 마시는 커피보다 진하고 잡념을 지운 여백을 감돌며 묵직하게 감겨든다.
여름 계곡물이 굽이치는 서늘한 산속 선방으로 들어앉은 듯 고요하다.
브런치 알림 새소리가 들린다.
브런치 이웃님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 다녀왔다는 소식이다.
궂은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마애여래삼존상은 환히 웃고 계신다.
2021년 겨울, 얼음이 쩡쩡 언 계곡을 힘들게 올라가서 처음 알현했던 그때도 온화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온한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쳐주신다.
언제나 간직하고 싶은, 넘치지도 말고 가라앉지도 말며, 수평선 그 모습으로..
온갖 역경을 헤쳐 인생 말미에 이른 주름진 노파의 얼굴이 인자하게 웃듯이 웃음을 머금은 시련은 1000도에 이른 불길에도 굴하지 않고 말간 얼굴 다시 태어난 도자기의 생명력과도 같다.
올해 장맛비는 예전과 다르게 한 지역에 집중호우를 퍼붓는 형태 옮겨 다니며 비 피해를 준다.
비도 폭력성을 띠면 폭우가 된다.
지구온난화에 몸살을 앓는 비구름들이 몰려다니며 성노하는 것 같다.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태양을 먹어치우며 물줄기를 쏟아붓는 장마철 하늘 아래 꽃과 나무들은 우산도 없이 비에 젖는다. 너무 때리니까 고개를 푹 숙인 풀줄기들의 가녀린 목덜미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앞을 가려 눈을 못 뜨는 지경에 이를지언정 수련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꽃을 피우고 음습한 음지에 숨은 달개비도 파란 꽃을 피운다. 연꽃보다 꽃송이가 작은 수련은 수면에 부력을 띄우며 목숨만 간신히 건지며 일분일초 생존한다. 목까지 차오른 물이 넘어올 듯 말 듯 절체절명의 순간 꽃을 피운다. 눈물을 삼키며 피우는 꽃들이어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오후에는 동네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물에 잠겨 질퍽거리는 슬리퍼를 끌고 이 비에 모두 안녕하신지 봄날 자주 갔던 나무들에게 다가가서 안부를 건네야겠다. 빗방울 머금은 작은 풀꽃들을 발견한다면 너무너무 반가울 것이다.
휘청이는 허리 가누며 얼굴을 쓱 닦고 싱긋, 웃고 있을 꽃들이 보고 싶다.
이따가 보자꾸나.
잠시잠깐 우산을 씌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