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Nov 05. 2023

아름다움은 경각을 다툰다

왔나 싶더니 간다고 한다.

왜 더 있다 가지 그래?

아니야, 갈래… 서서히 떠날 준비 해야만 돼.

지천에 향기로운 꽃들 피워놓고 낙엽들 오색 빛으로 물들어 나뒹구는 이 무렵 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떠나는 뒷모습을 무채색으로 눈물짓게 한다.

황금 햇살 머금은 산국들의 속눈썹이 속수무책 젖는다. 

보랏빛 초롱별 하나 따서 간직한 나팔꽃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아버렸다.


아쉽지만 돌아서는 순리를 따르게 한다.

바람이 몹시 분다.

저편 하늘은 환한데 이편 하늘에 낀 먹구름이 빗방울을 후드득 날린다.

우산이 없다.

주막에 뛰어든 그 옛날 나그네같이 그늘막 아래 잠시 비를 피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베이지색 코트에 스며든 빗방울이 얼룩덜룩 얼룩진다. 이러다 말겠지.

먹구름을 서서히 평정하는 엷은 하늘색을 낙관적으로 믿어보기로 한다.


나지막한 동산으로 이끄는 나무 계단을 디뎌본다.

흐린 하늘이 드낮게 내려오는 날에는 동산에 오르는 걸 좋아한다.

하늘과 만나기 좋은 날, 바람이 불어온다.

여름내 무성하던 수크령들이 연갈색 씨앗들을 날려 보내려 몸부림친다.

몸통의 절반이 잘려나간 팽나무 가지들이 반쪽짜리 바람의 화음을 한 손으로 연주하느라 고역을 치른다. 

발치에 깔린 구절초들이 아니었다면 팽나무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을 저 무음의 슬픈 곡조를 빙글빙글 돌면서 듣는다.


붙잡을 수 없다면 놓아주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아름답기에 떠나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절대 흥정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대체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자리하여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난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절대적인 거리를 요구한다.


아름다움은 맹목적이다.

꼭 어떤 이유나 빌미 같은 단서를 달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압도적인 전율을 시공간에 펼쳐 보이며 홀연히 떠나가는 봄가을은 그리움을 생채기 내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그리하여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깊어진다.


숲 속 빽빽하던 나뭇잎들이 그늘을 거두어들이며 빈 여백이 드러날 때 그 집은 음영이 더 짙어진다.

초록색 나무들에 가려져 안 보이던 모습이 골격을 드러낸다.

잿빛 구름을 뚫고 떠오른 한 가닥 햇살이 그 집의 붉은 벽돌을 유난히 환하게 쪼여주던 어느 가을날 처음 마주쳤다. 

숲 속 웅크린 채 버려진 모습을.

웅크렸지만 떡 벌어진 어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삼 층짜리 저택은 광채 나는 유리 창문을 입기 직전 모든 공사를 멈춘 상태였다.

그 집은 그 순간 고장 난 시계를 멈추어야 했다.

누군가의 싱그러운 꿈을 저당 잡힌 설계도는 버려져야만 했다.


일 층 큼지막한 거실 공간에는 가족들의 단란한 저녁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벽난로가 타닥타닥 타올랐을 테고 오렌지색 샹들리에 불빛 반짝거리는 식탁에는 수저 부딪는 정갈한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입가에 닿기 직전 흘리는 웃음과 밥알 몇 개쯤 관용하였을 것이며, 상아색 계단을 올라간 이 층에는 침실 여러 칸 그리고 차를 마시는 다실 테이블에는 읽다 만 책 한 권과 꽃병이 놓여있고, 별빛의 은총을 입고서 이 집의 질서를 총괄하는 지붕 바로 아래 삼 층 서재에는 집주인의 취향을 말해주는 책들이 과거 현재 미래로 가지런히 배열돼 있다. 


각 층마다 숲이 잘 보이는 통창이 열려있어 집은 사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흡수한다. 낙엽이 지고 낙엽의 두께를 흰 눈이 내려 덮이는 숲 속 그 집 이력을 시간은 허용하지 않았다. 무슨 연유로 완공을 목전에 둔 누군가의 꿈은 그 비밀의 장막을 덮어버려야만 했다. 


집 입구는 철제 펜스로 막혔다. 

그 집 비밀의 사연을 염탐하는 또 누군가는 그 펜스마저 훼손하며 들어간 흔적이 뚫려있다. 

봄여름에는 밀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낙엽 지는 이 무렵 집은 아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집이 아픈 상처를 훌훌 털어내고 고공을 향해 절반쯤 낙천성을 드러내는 계절도 이 무렵부터이다. 

빈 가지들을 훑어 볕이 들기 시작하면 고벽돌 붉은 색채가 약간의 활기를 입는다.

알 수 없는 열병에 들떠 불그레한 뺨이 창문 공간에 침투한 내부의 어둠을 모조리 걷어내려 발돋움하는 것 같다.


불의의 사고로 실명한 채 축축하게 이끼 낀 숲 속 오솔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지만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는 돌집에 폐인처럼 살아가는 로체스터가 저런 집에 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사유지에 묶여 관도 손 못 대고 황폐하게 버려진 그 집이 언젠가는 달빛을 머금은 투명한 유리창을 달고 발코니 난간에 제라늄을 키우는 날이 오게 되기를…. 그럼 잠시 잠깐 스쳐 가는 내가 안심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이 가을이 보여주는 것을 발품 누비며 다 보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분홍색 그러데이션 된 다알리아를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동요 ‘시집간 누나가 좋아하던’ 과꽃을 보았다. 늦은 밤 아이를 기다리며 육교 위에서 쇠잔한 귀뚜라미 목소리와 함께 가녀리게 흔들리던 억새를 보았다. 벚나무가 쏟아낸 붉은 울음을 보았다. 11월의 향기를 남몰래 진하게 피우는 장미 두 송이를 만났다.


이제 떠나가라. 

경각을 다투며 떠나가는 아름다움을 붙잡지 않겠다.

즐거운 눈꽃을 기다리며 쓸쓸한 가을이 제멋대로 떠나감을 허한다.      










이 가을에 보았다, 고맙다, 이리 향기로운 꽃 피워주고 떠나가서...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날의 사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