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아가는 나의 행복을 가격으로 따지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500원이다.
1500원의 행복을 맛본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찬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공원 입구에 작은 포장마차가 생겼다.
나무 그늘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작은 체구의 포장마차였다.
이편 길거리에서 눈도장을 찍고는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에게 넌지시 들러볼 것을 권유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 손에는 뜨끈뜨끈한 붕어빵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언제나 꼬리부터 베어 문다.
바사삭, 크래커를 씹는 소리가 들리면서 노르스름 잘 익은 몸통 비늘도 바삭바삭했다.
껍질은 바삭거리면서 속빵은 촉촉하고 고소한 맛. 팥앙금도 되직하고 은은하게 달달했다.
요 근래 맛보지 못한 맛, 삼십여 년 전 회기역 전철역 앞에서 먹던 기억 속에 묻어둔 맛이었다.
집 앞 공원에 새로 생긴 붕어빵 맛이 그때 먹던 붕어빵을 소환했다.
혀끝에 마시멜로처럼 녹아든 이 맛의 유혹을 못 이기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발로 찾아갔다.
잘 구워진 붕어빵이 두둑하게 쌓여있고, 떡볶이 순대 어묵 분식 삼총사는 안 보인다. 주인장도 안 보인다.
초로에 접어든 어떤 아저씨가 어설픈 동작으로 붕어빵을 대신 팔고 있었다.
“붕어빵 네 개 주세요.”
“나도 사러 왔어요. 아줌마는 화장실 가고요.”
잠시 기다려도 감감무소식 이거 사자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냥 가자니 아쉬웠다. 계좌이체번호를 보고 값부터 입금하였다. 마침 볼펜이 보였고 휴지가 놓여있었다. ‘네 개 이체하고 가져갑니다.’ 메모하고는 붕어빵 네 개를 담았다. 내 모습을 본 그 아저씨도 주섬주섬 붕어빵 여덟 개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상한 공모자(?)가 되어 돌아서려던 찰나 헐레벌떡 주인아줌마가 뛰어왔다.
붕어빵 맛만큼이나 근래 보기 드문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내 또래이거나 더 어려 보였다.
“아, 오셨다. 붕어빵이 너무 쫀득하고 맛있어요.”
열기가 후끈한 검정 비닐봉지를 펼쳐 보이며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붕어빵 네 개를 보여주면서 이체하였다고 이름을 말하였다. 주인아줌마는 볼 것도 없다며 손사래 치며 웃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발걸음이 피아노 흰건반을 두드리듯 가볍다.
붕어 네 마리가 든 비닐봉지는 월척을 낚은 것처럼 묵직한 행복감을 전해주었다.
대각선 길 건너에도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다. 그곳은 작년 겨울부터 터를 잡고 팔고 있는데 한 번 가서 마주친 주인의 눈빛이 거북하여 다시는 안 간다. 맛도 반죽을 물 탄 물컹한 맛이다.
해맑은 주인장 붕어빵은 반죽과 팥앙금에 물 타지 않은 진한 맛이 맛의 비결인 것 같다. 적당히 물 타서 재료를 불리면 더 많이 팔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직한 맛은 벌써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다가오는 겨울 부지런히 참새 방앗간을 드나들 게 뻔하다.
터도 잘 잡은 것 같다. 지하철로 가는 공원 입구이면서 광역 버스 정거장이 바로 코앞에 있다. 춥고 출출한 오후 따끈한 붕어빵 한 봉지가 건네는 위안은 언 마음을 녹인다. 가끔 사 먹는 비싼 트러플 소금빵보다 이 붕어빵이 솔직히 더 맛있다.
저녁에 차로 나갈 일이 있어 내다보니 일찍 자리를 뜨고 없었다. 딸린 식구들 저녁 준비하러 가나 보다. 원재료 가격도 만만찮을 텐데 저렇게 하루 팔아서 얼마나 벌지… 내 생활을 반성하며 정신이 퍼뜩 든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 둔감한 물가에 대하여 카드를 함부로 쓱쓱 긁고 다니진 않았던가.
최근 연일 기사화되고 있는 한 체육인의 안타까운 몰락을 본다. 정직한 땀방울의 대가로 쌓아 올린 명성이어서, 한때 우리에게 기쁜 메달 소식을 안겨주어서 더 그렇다. 순수한 미소년의 얼굴로 다가와서 친근감을 유발했다. 값비싼 선물 공세를 했다. 성 정체성 혼란을 드러내며 동정심을 유발했다. 사랑을 고백했다. 그런데 작정하고 달려든 사기꾼의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들 파상 공세에 예리한 검을 다루는 펜싱선수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못했을까.
날렵하게 움직이며 후퇴와 전진을 거듭 공격과 방어 기술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피부 표면 세포까지 체득한 그녀가 갑자기 자기 인생에 등장한 한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방심하다니…. 민첩한 몸놀림을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했다면 필패하지 않았으리라. 허영심의 늪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하나를 건네주니 달콤하였다. 또 하나를 받아먹으니 더 달콤했다. 먹고 또 먹고 포만감이 밀려들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 지경이 되면 판단력은 흐려지고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부디 자신에게 최악인 그 선택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지난주 30℃, 이번 주는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날씨 변동만큼이나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푸른 꿈나무들을 지도 육성하면서 언젠가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밤 자신의 검이 부러졌던 때가 있었음을 담담하게 돌이켜보는 날이 오게 되기를….
전 세계에 매장을 둔 면세점 그룹 ‘DFS’(Duty Free Shoppers)의 창립자인 미국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92)는 전 재산 80억 달러(한화 10조 원) 넘게 기부했던 그였지만, 지난 달 타계하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2만 원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소유한 그였지만 그의 정신은 저 우주에 빛나는 별들만큼 무욕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벤츠 s클래스에 타고 먹는 붕어빵 맛이 더 특별하진 않을 것이다.
노랗게 잘 익은 거리의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붕어빵 먹는 맛을 더 맛있게 거든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신이 좋다. 두 개 1500원 하는 붕어빵들이 어쩌면 내 안에 남아있을지 모를 허영심을 푹 찔러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어느새 낙엽을 버린 나목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11월, 어떻게 하면 겉치레 버리고 군더더기 버리고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숙제를 겸허히 받아 든다. 인생 반환점을 돈 중간평가를 스스로 내려본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