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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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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Feb 29. 2024

종이집

                                      _남연우



집 안에 집을 짓는다   

  

골판지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창문을 따로 내지 않은 집

비가 내리면 젖어 허물어지고 말 집     


집 둘레에는 가시 돋은 탱자나무를 심고

바람 불면 날아가지 말라고

무거운 짱돌 한 장 얹어둔 집     


그 안에 웅크린 몸을 구겨 넣는다

바깥 통유리창이 홍수 같은 빛을 쏟아내면

점점 구겨져 깜깜한 종이집     


그믐달의 분화구에 빠져 음 소거된 그 집

고립으로 깊어진 바닷물이 외따로이 잠긴

섬을 만든다     


저녁이 되어 우는 새들은

만조 때 서해안에서 날아온 물새들

밤새 나뭇가지에 앉아서 뜬눈 지새우다

새벽이 열리는 동쪽으로 물기를 닦는다     


썰물이 흩어진 아침 섶다리를 밟고 

도착한 택배 한 상자,

잘 익은 전등갓을 쓴 열 개의 불빛이 

어둑한 섬집을 주렁주렁 밝힌다     


그 섬 언 눈 속에서

숭덩숭덩 돌담 드나드는 비바람에 시달려도 

온기를 꺼뜨리지 않은 한라봉들이

소슬한 한기를 다습게 몰아낸다


종이집 한 채 바지직, 부서졌다   

구김이 펴졌다           









어제 받은 택배 상자를 열었더니 이토록 환한 불빛이 구겨진 마음을 환히 밝혀주었습니다 싱싱한 초록잎이 달린 올록한 부분이 전등갓을 쓴 모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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